국가보훈부가 지난해 7월31일 ‘8월의 독립운동가’를 발표했다. 일제가 간도로 이송하던 15만원을 탈취한 사건의 주역인 독립유공자, 윤준희(1963년 독립장), 임국정(1963년 독립장), 한상호(1963년 독립장), 김강(1995년 독립장) 선생을 선정했다. 국가보훈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독립을 꿈꾼 청년들이 철저히 준비하고 실행한 ‘간도 15만원 사건’은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쾌거였고, 이는 그 시대를 살아가던 독립군들의 독립전쟁이었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 사건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쟁취 15만원 사건 유적지임을 알리는 기념비

수풀에 싸인 15만원사건 안내석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찾아가지 힘들지경이다.

●15만원 쟁취사건, 청산리 대첩과 비견할 만
윤동주 생가로 가는 길, 용정촌 부근에 설치된 ‘탈취십오만원사건유지(奪取十五萬元事件遺址)’를 찾아갔다. 철혈광복단 투쟁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철혈광복단은 1911년 초 이동휘(李東輝·1873~1935)가 조직한 광복단(光復團)과 러시아 지역에서 1917년 2월 혁명 이전 조직된 비밀결사인 철혈단(鐵血團)이 통합·조직된 단체다. 소설 ‘범도’의 작가 방현석은 “이 비석에서 ‘탈취’는 일제의 입장이다. 우리의 입장은 ‘쟁취’가 맞다. 일제가 강탈한 돈을 되찾은 것이기 때문이다”며 철혈광복단 투쟁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이 사건은 이만희 감독이 만든 영화 ‘쇠사슬을 끊어라(1971)’, 김지운 감독 작품 ‘놈놈놈(2008)’의 모티브였다고 알려져 있다. 1920년 1월4일 일화 15만 원을 운반하는 호송대가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용정을 향해 출발했다. 그날 오후 간도 용정촌(龍井村) 부근, 승지촌과 동량리 어구에서 윤준희(尹俊熙·1895~1921), 임국정(林國楨·1896~1921), 한상호(韓相浩·1900~1921), 최봉설(崔鳳卨·1897~1973), 박웅세(朴世雄· 1897~?), 김준(金俊·1900~1979) 등 6명이 거사를 일으켰다. 회령과 길림을 잇는 길회선(吉會線) 철도 부설 기금 15만 원을 쟁취한 것. 조선은행 용정출장소 행원이었던 전홍섭(全弘燮·1890~1938)도 일조했다.
작가 방현석은 전홍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홍섭은 일제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했으나 철혈광복단원의 무기 구입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보름을 버텼다.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길’ 즉 ‘범도의 길’이 무장독립전쟁의 버팀목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자랑찬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사건은 동포들에게 청산리 대첩과 비견될 만한 뜻있는 역사”라고 강조했다.

연길감옥투쟁 영웅 김훈이 수장당한 부르하통허 야경.

윤준희 임국정 한상호 김강선생 이미지. 국가보훈처 제공

연길시병원 의료?동체본원이라는 표현이 이채롭다

●15만원은 소총 5000정·탄환 50만발 구할 자금
15만원을 현재가치로 따지면 15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소총 5000정과 탄환 50만발을 구할 수 있는 자금이다. 5000명이 무장할 수 있었다. 만주 지역의 독립군 모두를 무장시키고 더 많은 부대를 추가로 조직할 수 있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거사 직후 박웅세와 김준은 명동으로 돌아갔다. 일제에 체포되지 않았다. 단원 4명은 탈취한 자금을 대한국민의회 선전부에 헌납하기로 하고 1월23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다음 날 대한국민의회 서기이자 철혈광복단 단장인 전일(全一·1893~1938)을 만났다. 무기 구매, 사관학교 건립 등 구체적인 사용계획을 수립했다. 임국정은 러시아 군인과도 거래하기로 합의했다. 소총 1000자루, 탄약 100상자, 기관총 10문를 3만2000원에 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밀정 엄인섭(嚴仁燮·1875~1936)이 무기 밀매를 알선하는 척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총영사관에 밀고했다.
1월31일 새벽, 일제는 숙소를 포위하고 단원들을 급습했다. 윤준희, 임국정, 한상호는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생포됐다. 최봉설은 탈출했다. 6명 중 3명이 밀정 엄인섭 밀고로 일제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정박 중인 일본 군함으로 압송돼 혹독한 고문을 당해야 했다. 함경북도 청진지청 1심에서 임국정과 윤준희는 사형, 한상호는 무기징역, 전홍섭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2심인 경성복심법원과 3심인 경성고등법원은 세 명의 단원에게는 사형, 체포되지 않은 최봉설, 박웅세, 김준에게는 궐석재판으로 사형을 선고했다. 전홍섭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결국 30세 윤준희, 27세 임국정, 22세 한상호는 1921년 8월 25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산화했다. 국가보훈부에서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김강(金剛·?~1920)은 평양 숭실학교 105인 사건으로, 1912년 만주로 망명했다. 하얼빈과 간도 등지에서 한인 청년들을 규합했다. 1919년 11월, 간도청년회를 조직했다. 일제는 간도청년회가 15만 원 사건과 연루된 것으로 간주했다. 김강은 도피 생활 중 1920년 11월 12일 연길현 태평구(太平溝) 용포동(龍浦洞) 부근에서 카노기병연대(加納騎兵聯隊)에 체포돼 연길현 동불사 북구(北溝)에서 피살 순국했다.

연길 시내 고층빌딩 사이 2층벽돌집, 재개발을 기다리는 듯하다.

●연길 허름한 2층집, 철혈광복단원 모의하는 듯
한겨울 만주벌판에서 15만원을 쟁취했으나 동포의 배신으로 산산이 부서졌고 더운 여름날 조국 앞에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이 탑은 15만원을 쟁취한 그 지점에 설치됐다.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수풀 속에서 감춰질 듯했다. 20대 청년들이 목숨을 바쳐 싸웠던 유지를 받드는 방법이 무엇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연길에서 1박했다. 호텔 근처에 연길대교가 있었다. 연길감옥투쟁의 영웅, 김훈을 생각하며 야밤에 부르하통하와 연길대교를 건너봤다. 파옥투쟁을 성공으로 이끈 김명주를 생각하며 연길 시내를 걸어보기도 했다. 감옥투쟁가를 지은 이진을 기리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읊조리기도 했다. 연길의 거리는 고층빌딩이 즐비했다. 빌딩 사이에 인민병원도 있고 어린이 도서관도 있다. 글씨가 적힌 적·녹색 신호등도 있다. 보통 도시와 같은 모양새다. 그러던 중 고층 빌딩 사이로 허름한 2층 벽돌집 하나를 찾았다. 과거 연길에는 이런 집이 많았던 기억이다. 20여 년 전이라면 좋은 집이었을 것이고 공산당 간부급이 살았을 법하다. 지금은 철거 직전인 것 같았다. 그 집에 들어가고 싶어졌다. 마치 철혈광복단 단원들이 15만원 쟁취 작전을 모의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급변하고 역사는 뒤안길로 사라진다. 우리의 몫이 무엇인지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이진 광주광역시의회 운영수석 전문위원

이진 광주시의회 운영수석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