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기 참사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져요. 비록 명절이지만 그들을 두고 어떻게 맘 편히 쉴 수 있겠어요. 그래서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싶어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설 연휴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인 무안공항 대합실.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여 웃고 떠들며 즐기고 있을 법한 그 시간, 현장을 차마 떠나지 못한 채 유가족들과 함께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설 연휴 기간에도 대합실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가족 단위의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그 조문객들을 위해 식사와 음료를 나르는가 하면 빈 시간 대합실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중 서울·제주에서 무안공항을 찾은 장례지도사 4명도 눈에 띄었다. 장례지도사들은 1일 8시간씩 2인 1조로 교대하며 조문객 안내, 합동분향소 관리, 참배 방법 안내 등의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명절인데 집에 가지 않느냐”고 묻자 김권기 대한장례지도사협회 제주 지회장이 선뜻 “유가족 곁에 있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가족 친지를 떠나보낸 유가족들 만큼 이번 명절이 더 가슴저리고 아픈 사람이 있겠냐”며 “차마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 참사로 인해 슬픔에 잠긴 유가족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들 장례지도사들은 지난달 13일부터 설 연휴기간까지 합동분향소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김 지회장은 “합동분향소 의전 업무를 하면서 유가족들의 슬픔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며 “유가족들이 고인의 생전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릴 때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고 말했다. 이어 “장례지도사는 시신 수습부터 고인과 유가족을 마지막까지 돌봐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이번 참사 현장에서도 그 사명감을 가지고 봉사에 임했다”며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유가족들과 조문객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2인 1조로 1시간씩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처음 방문한 조문객들에게 참배 방법을 하나하나 알려드리고, 합동분향소를 깨끗하게 정리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함께 자리하고 있던 장례지도사협회 서울지회 소속 권민석씨(47)는 “매년 오는 설 연휴 가족과 보내고 싶지만, 사고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유가족 곁을 지키고 싶어 자원봉사에 참여했다”며 “처음에는 조문객이 엄청 많아서 시간이 금방 갔지만, 설 연휴기간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줄어들면서 심적으로 힘들었다. 그 와중에도 ‘수고한다’는 조문객들의 한마디에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가족들이 분향소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바로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며 “그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만큼 옆에서 조용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을 것”고 말했다.
또 다른 장례지도사는 “참사 현장에서 시신 수습 등의 봉사활동을 하는 봉사자들이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해외처럼 참사현장의 봉사를 했을 때 장례지도사도 상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한편 무안공항 국제선 탑승동 계단에는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하늘별빛 우체통’이 설치돼 유가족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있다.
추모계단에는 희생자들을 향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담은 추모객들의 손편지가 가득했고, 연휴 기간 많은 조문객들이 희생자들을 기리고 손편지를 통해 유가족에게 위로의 글을 전했다.
손편지운동본부 이근호 목사는 “유가족들이 갑작스러운 비보에 큰 혼란을 겪었을 것”이라며 “명절을 맞아 가족, 친구, 동료들과 함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손편지를 통해 마음을 나누며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체통을 운영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명절 연휴 기간 동안 자녀들과 함께 분향소를 찾은 가족들이 많았다”며 “아이들이 직접 쓴 편지를 통해 슬픔과 눈물을 함께 나누는 모습은 오랫동안 가슴에 새겨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친구와 화해하지 못한 채 이별을 맞이했다는 편지, 아버지를 잃고 결혼식 때 누구와 손을 잡고 입장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처연했다”며 “설 연휴 기간뿐 아니라 49재인 오는 15일까지 ‘하늘별빛 우체통’을 운영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