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은 봄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꽃망울이 맺혀있는 나뭇가지는 금방이라도 연둣빛 잎이 올라올 것만 같은 분위기다. 청아한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 20여분 무등산을 향해 오르다 만날 수 있는 숲속 한켠 산속미술관, 의재미술관에서는 이미 ‘봄’ 분위기가 물씬 나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연둣빛 설채로 봄 산의 부드러운 느낌을 표현한 ‘춘산명려’, 화려한 모란과 공작이 한눈에 들어오는 ‘부귀공작도’, 석문을 거쳐 무릉도원으로 향하는 어부의 모습이 활기찬‘석문도명’, 복사꽃이 만발한 가운데 어부가 동굴로 향하는 ‘무릉도원’을 들여다보면 옅은 수묵에서 배어나는 잔잔한 봄 향기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의재미술관이 소장품 중 의재 허백련(1891~1977)과 그의 동생 목재 허행면(1906~1966) 형제의 작품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전시를 마련했다. 지난 1일 시작된‘꽃 피고 물 흐르니’ 의재·목재 형제전이다.

추사 김정희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문인화의 정신이 깊이 스며있는 형제의 작품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화풍을 보여준다. 같은 듯 다른 화풍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의재와 목재의 작품을 통해 근·현대 남종문인화의 다양한 면모를 즐길 수 있는 전시다.

의재 허백련 작 ‘석문도명’

19세기 문인화가 소치 허련과 한 집안으로 진도에서 태어나 자란 의재와 목재는 어려서 서예와 묵화의 기초를 배울 수 있는 예술적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의재는 동양의 고전과 문인정신을 바탕으로 남종문인화풍을 견지하며 화단의 거장으로 일가를 이뤘다. 목재는 형인 의재에게 서화를 배웠고 목재라는 호를 의재로부터 받을 만큼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의재가 일본에서 법률공부를 하던 20대에 돌연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면, 목재는 광주고보 재학중 석고 데생이나 수채화, 유화 등 서양화 기법과 이론을 접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목재는 한동안 공무원, 금광사업, 제지사업 등을 하다가 1938년 의재가 연진회를 설립할 때 창립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화업을 시작했다.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경산수도 여러 점 남겼으며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적 감각과 회화미를 강조하면서 자기 세계를 개척해나갔다.

목재는 의재를 통해 남종문인화풍을 익혔지만, 의재의 사의적인 화풍과는 달리 다양한 채색 등을 통해 사실적인 그림을 위주로 자신의 화풍을 형성했다. 의재의 작품이 문인화 정신을 이어 평생 담담하면서도 기품있는 화풍을 보인 반면, 목재는 현실적인 풍경화와 화려한 군방도로 고법을 혁신했다.

의재 허백련 선생의 작업 당시를 연출한 공간.

1전시실은 목재의 작품이, 2전시실은 의재의 작품이 전시됐다. 2전시실 한켠에는 의재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의재의 사진과 다기, 붓, 먹, 종이 등을 배치한 이 공간은 의재가 그림을 그리기 전 춘설차를 뜨겁게 끓여 마심으로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매일 차와 함께 먼지 낀 정신을 씻어내려 깨끗한 붓끝으로 좋은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시간을 연출했다.

4전시실에서는 의재 허백련의 손자이자 의재문화재단 이사장인 직헌 허달재의 문인화전이 열리고 있다. ‘문향’, 포도’, ‘모란’, ‘난초’, ‘매화’ 등 수묵 사군자화 3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일반 성인 입장료는 2,000원, 녹차와 다과를 전시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차세트입장료는 5,000원이다. 만 13세 이하 어린이와 만 65세 이상 노약자, 장애인 등은 무료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