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이 'ㄴ'의 물건을 허락 없이 또는 불법적으로 가져가면 절도죄나 횡령죄로 법적 처벌을 받는다. 주인의 동의 없이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넘기는 것 역시 절도죄가 적용된다. 소유자의 동의 없이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 넘겨받아 소유하는 것 모두 절도죄가 성립된다는 말이다. 개인 간에 일어난 일도 이렇게 엄중한데 국가와 국가 사이에 벌어진 일은 어떠한가.

1910년 8월 2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은 한일 병합조약 체결을 위한 전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순종 황제는 망설였고, 황후는 국새를 넘겨주지 않으려고 치마폭에 감추며 저항했다. 이완용과 일본 데라우치 마사타게 통감이 서명한 뒤 내각의 의결을 거쳤으나 그 비준서에는 강제로 가져간 대한국새만 날인됐고, 순종의 서명이 없다. 일본은 나라의 주인인 순종 황제가 직접 날인한 것도 아닌 가짜 조약을 국제사회에 내밀며 국권침탈을 정당화 하고 있다.

불법적으로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은 1919년에 임시정부를 만들었다. 훔친 일본이 돌려주기 싫어 온갖 착취와 수탈을 일삼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했다. 이때 영원히 돌려받지 못할 거라고 판단한 일부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일본인보다 더 일본에 헌신했다. 일본을 칭송한 무리들이 형성한 식민사관은 조선인의 주체성을 제거했다. 강제로 나라를 빼앗기고 일본에 식민지가 된 것을 정당화 하는 것을 넘어 몇천 년을 계승해온 조선인의 국적이 일본 국적이 된 것을 역사로 인정했다. 옆 사람이 내 물건을 강제로 가져간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 꼴과 다르지 않다.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켜 줘서 대한민국이 경제 선진국의 발판을 이뤘다는 주장이 황당하다는 것은 유치원생도 다 안다. 조선의 곡식이나 자원을 손쉽게 가져가기 위해 도로나 철길이 필요했고, 조선인을 강제 노역시켰다. 위안부나 강제징용 등 수많은 수탈에 대해 일본은 변상은커녕 조선 근대화의 공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판국에 일명 '뉴라이트'들은 나라가 망한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인은 국적이 일본이었다고 하거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1948년 8월 15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야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의 작태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사실로 규정 될 때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강제 동원에 대한 변상이나 과거사 사과 요구는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한다. 일본 국적을 가진 조선인은 일본인이고, 일본을 위해 일한 것이니 어떠한 것도 요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영토, 국민, 주권의 국가 3요소 중 주권을 강제로 빼앗아 간 일본을 변호하고 있는 이들의 국적이 심히 의심스럽다.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숄츠 교수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한국 역사 강연을 할 때 일본은 한국에게 과거의 잘못을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유학생들의 거센 항의에도 끄떡하지 않고 일본인에게는 불편한 진실인 과거사를 이야기한 것이다. 특히 일본은 한반도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이주민들이 세운 나라임을 강조했다. 강성해진 고구려가 백제를 위협했을 때 백제와 일본 간 동맹을 맺고 관계를 돈독히 했다. 백제 왕족 중 일본으로 건너가 성장하면서 발전된 백제의 문물을 전파한 사람들도 있다. 무령왕 역시 부여곤지의 아들로서 일본으로 넘어가던 중 카카라 섬에서 자라며 '사마왕'이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였다. 일본 여자와 결혼하고 그의 후손이 지금 일본의 왕실을 이루었다는 설과 함께 후손들이 시조를 보기 위해 공주의 무령왕릉을 방문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섬나라 일본은 지형적으로 선진 문물의 유입로가 막혀 있어 학문이 발전한 한국에 대해 예로부터 계속 열등감과 동경심을 동시에 느끼며 살아왔다. 스승 같은 존재인 조선은 성균관의 고등 교육을 받은 엘리트에 의해 나라가 운영될 때 일본은 군인들을 통해 강압적인 통치를 했다. 이것만 봐도 일본이 침략하기 전에는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발전된 나라였다는 것을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한다고 했다.

1853년, 미국의 페리제독이 일본에 도착해서 강제로 개항을 요구해서 미국의 식민지가 될 뻔했던 때에 일본에게 천운이 주어졌다. 1861년에 미국 본토에 남북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이틈을 타 일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1865년에 미국의 압박을 받던 시기에 전수 받은 기술을 토대로 메이지유신을 하고, 역사상 처음으로 조선을 앞서게 되었다. 긴 세월 동안 한국의 문물을 받던 일본이 근대화를 이뤄냈다. 그 기세로 강대국들과 서로 이권을 인정하기 위한 조약을 맺고, 조선을 강제로 차지했다.

어떤 식으로 해석한다 해도 미개한 우리나라가 개화시켜 달라고 일본에 요청했다는 것은 타당할 수 없다. 아무리 일제강점기에 대해 궤변을 늘어놓는다 해도 믿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일제와 6.25의 험난한 시기를 거친 우리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세계가 놀랄 기적을 이루었다. 서양이 몇백 년 걸린 민주주의를 우리는 몇십 년 만에 이루었고, 계속 성장해 가고 있다. 고작 3년 남은 대통령 자리에서 우리의 역사를 일본에 바치는 행위는 이제 멈추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 그림책 '청통 투구를 쓴 소년'(지은이 소윤경, 봄볕출판사, 2024)처럼 시상식에 올라 월계수 잎으로 일장기를 가린 최초의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 나라를 구하려고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한 분들, 강제 동원으로 삶이 무너진 수많은 희생자들이 미소 짓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