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인 늦더위에도 우리 농촌 들녘은 어느덧 황금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가을 황금 들녘을 생각하면 풍년 농사에 대한 설렘과 기쁨으로 농부의 마음은 충만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근래엔 도리어 쌀값 하락으로 농업인들의 걱정과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흔히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한다. 그만큼 쌀은 주식으로서 우리 민족과 유구한 역사를 함께 한 에너지 원천이자 농업 근간이다. 하지만 주식으로써 쌀에 대한 인식과 소비 양상이 급변하고 있다. 최근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4kg으로 30년 전의 절반 수준이다. 수급 불균형에 따른 쌀값 하락 등으로 생산 농업인들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반면 최근 이코노미스트 인테리전스 유닛(EIU)이 각국의 식량 공급능력과 식품 안전 등을 종합 평가해 발표하는 세계 식량안보지수(GFSI)에서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 수준으로 나타나 심각한 기후 위기와 주요국의 식량 무기화, 국제적 식량 공급망 위기 속에서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 정부 식량 정책의 주요 과제는 쌀 수급 불균형 해소와 식량자급률을 높여 식량 안보를 강화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에 따른 새로운 농업정책으로 정부는 수입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는 가루쌀을 개발하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가공식품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가루쌀은 일반 밥쌀용 쌀과는 다르게 정부가 가공용으로 개발한 신품종 쌀이다. 일반 밥쌀과 달리 물에 불리지 않고도 건식 제분이 가능해 수입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한 전분 구조가 치밀하지 않아 잘 부스러지고 쌀을 불리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도 획기적으로 줄었으며 글루텐 성분이 없고 제분 후에도 전분 손상이 적고 입자가 매우 고운 가루 생산이 가능하다. 물론 품목 특성상 재배 시 어려움도 있다. 가루쌀은 병해충에는 강하지만 일반쌀에 비해 생산량이 낮고 수발아 발생 위험성이 있어 재배 시 주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성공적인 가루쌀 산업 활성화 정책 추진을 위해 생산부터 가공, 유통 전반에 관한 가루쌀 추진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생산단계에서는 가루쌀의 수발아 발생 위험성을 낮추고 생산성을 확보하기 위해 컨설팅 업체를 통한 파종, 육묘, 이앙, 포장관리 등 재배기술을 적극 보급하고 있다. 동시에 가루쌀 제품화 패키지 지원사업 추진으로 관련 업체의 가공 및 유통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소비자 입맛에 익숙한 밀가루를 대체하면서 다양한 양질의 제품들이 적정한 가격으로 판매될 수 있도록 관련 사업 참여 기업 제품에 대한 온·오프라인 홍보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유통지원 일환으로 2023년부터 가루쌀을 공공비축 벼로 매입하고 있다. 첫 해에는 38개 생산단지 2,000㏊에서 출하된 7,800톤의 가루쌀을 매입했다. 올해도 전국 135개 생산단지 1만㏊에서 출하될 가루쌀 4만톤을 매입할 계획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2024년산 가루쌀의 원활한 매입을 위해 검사 수분 규격을 일반벼와 동일한 15%로 상향했고, 생산단지와 유대관계 강화, 농가 사전지도·홍보 확대 및 검사관의 검사 역량 강화 등을 통해 철저한 사전준비를 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농산물품질관리원 및 관련 기관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확실히 많은 국민들이 가루쌀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하지만 가루쌀 산업의 보다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원료생산 기반 조성, 제품 개발 등에 대한 정부 지원과 가루쌀 원료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생산농가의 노력, 그리고 식품업체의 소비나 선호도가 높은 제품 개발 등 각 분야에서 지속적인 노력이 수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출장가는 길에 유독 쌀값 보장이라는 붉은색 문구의 현수막이 많이 보인다. 쌀값 하락으로 농민들의 집회가 계속되고, 수확을 앞둔 자식 같은 벼를 갈아엎는 등 농촌의 슬픈 현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농림공직자로서 너무나도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정부의 가루쌀 산업활성화 정책과 더불어 벼 재배면적 감축, 과학적 예·관측 시스템 구축, 전략작물직불제도 등 다양한 쌀 수급 안정 대책을 통해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 문제가 해결되고 희망과 기쁨이 가득한 농업·농촌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