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시네필이라면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이면 기다리는 것이 하나 있을 것이다. 바로 영화 평론가 이동진이 선정한‘올해의 한국영화 BEST 10’과 ‘올해의 외국영화 BEST 10’이 아닐까. 이건 다소 주관적인 견해이기에 ‘난 시네필이지만 그렇지 않은데요’라고 한다면 그것도 인정. 실은 나도 이동진 평론가의 BEST 10을 기다릴 만큼은 아니고(아, 나는 시네필은 아니다) 발표가 나면 내가 본 영화가 몇 개나 있나 싶은 생각에 살펴보곤 한다.



●이동진 평론가 ‘올해의 영화’ 선정

올해 선정된 이동진 영화 평론가의 ‘2024년 올해의 한국영화 BEST 10’을 살펴보면 10위 ‘해야 할 일’(박홍준), 9위 ‘딸에 대하여’(이미랑), 8위 ‘돌들이 말할 때까지’(김경만), 7위 ‘여행자의 필요’(홍상수), 6위 ‘더 킬러스’(김종관, 노덕, 장항준, 이명세), 5위 ‘보통의 가족’(허진호), 4위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김다민), 3위 ‘수유천’(홍상수), 2위 ‘벗어날 탈’(서보영), 1위 ‘장손’(오정민) 순이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두 편이나 있는 것에 놀라웠고 이 10편 중에 본 영화가 두 편밖에 없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라웠다. 그래도 2023년 BEST 10 중에서는 두 편 빼고 다 본 영화였는데 ‘올해는 정말 영화를 멀리했구나’를 새삼 느끼게 해 준 이동진의 BEST 10이었다.

이번에는 이 10편의 영화 중 2024년 개봉 당시 매우 궁금했던 영화 한 편을 골라봤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의 BEST 10에 무려 4위에 랭킹된 김다민 감독의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했고 어린아이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독특했다. 이동진은 이 영화에 대한 한 줄 평으로 ‘상상력도 이쯤 되면 거의 시리어스급’이라며 호평했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11살 동춘은 어릴 때부터 항상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밥을 먹다가 우연히 보게 된 아빠의 머리를 보고 “대머리가 영어로 뭐예요?”라는 질문을 한 것 뿐인데 엄마는 영어학원에 보낸다.

영어학원을 다니다가 “제가 왜 이걸 하고 있나요?”라고 질문하자 원어민 영어 선생님은 엄마한테 물어보라 하고 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는 다시 영어 선생님한테 물어보라고만 한다. 아무도 동춘의 질문에 정확한 답은 주지 않고 그때마다 학원의 개수만 늘어간다.

동춘은 정확한 답도 없이 질문을 할 때마다 학원의 개수가 늘어난다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질문하지 않고 모든 것에 순응한다. 그렇게 동춘은 11살이 됐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말수가 없는 동춘은 거의 혼자이다. 빽빽한 학원 시간표가 적힌 핸드폰은 동춘의 하루일과가 적힌 그저 먹통 기계일 뿐이다.

수학여행을 가는 날, 할머니나 좋아할 법한 아침 햇살 음료를 좋아하는 동춘, 같은 반 친구들에게 이런 동춘은 조금 이상한 아이이다. 수학여행에서 심한 멀미로 잠시 누워있던 동춘은 저녁이 되어서야 눈을 뜨고 숙소를 어슬렁거리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묘한 소리에 이끌려 소리를 따라가다가 소화전을 열게 된다.

그 안에는 막걸리 한 통이 놓여있다. 동춘은 막걸리를 몰래 음료수통에 넣어서 집으로 가져온다. ‘또또똑 또또똑 또똑’ 갑자기 모스부호와 같은 소리를 내는 막걸리. 동춘은 이 소리가 막걸리가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만 이를 해석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영화 ‘막걸리가 말해줄거야’

●막걸리가 로또 4등 번호도 알려주고…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페르시아어 전형이 새로 생길거라는 소식에 동춘을 페르시아어 학원에 보내고 막걸리에서 나는 소리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페르시아어로 해석하자 막걸리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막걸리는 로또 4등의 번호도 가르쳐주고 자신을 큰 통으로 옮기라는 둥, 누룩을 사서 넣으라는 둥 하나하나 동춘에게 뭔가를 지시한다. 그리고 마침내 동춘에게 마지막 미션을 주는데….

영화는 동춘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대학 내내 장학금을 받고 대기업에 입사해 연봉 6,000만원까지 받았던 엄마 혜진은 경력이 단절됐다는 우울함에 몹시 힘든 시간을 보내다 상담을 해준 선생님의 자식을 키우는 것 또한 다른 삶의 시작이라는 말에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든 동춘을 잘 키워보려고 노력하는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엄마이다. 딸바보 아빠 역시도 동춘을 위해서라면 적극적이다.

서울대를 나왔지만 7년 동안 자연인이 된 동춘의 외삼촌 영진은 편의점에서 우연히 만난 동춘이 자신의 조카임을 모른 채 동춘을 소소하게나마 도와준다. 그리고 동춘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캐릭터 털북(보라색)이와 숭이(노란색)는 동춘의 행동에 질문을 하고 동춘의 질문에 답을 해주는 유일한 친구이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 중요 등장인물인 막걸리, 막걸리는 동춘에게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의 시나리오를 쓴 김다민 감독의 데뷔작이다. ‘살인자ㅇ난감’이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라면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김다민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과 상상력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동네 평생학습관의 전통주 만들기 수업에서 막걸리를 만들었는데 집에서 숙성을 시키면서 막걸리에서 나는 소리들을 들으며 미생물의 생태계도 살아있구나라는 느낌과 산책을 하다 우연히 본 학원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경험이 막걸리와 동춘을 만나게 한 모티브가 되어 2019년 ‘경기 시나리오 기획개발지원’에 당선됐다.

막걸리와 학원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 둘 다 어떤 원리가 있지 않을까에서 출발한 호기심이 한 편의 영화로 탄생한 것이다.

영화 ‘막걸리가 말해줄거야’ 포스터

●동춘 역 맡은 박나은 발굴 ‘성과’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발견은 바로 동춘역을 맡은 박나은 배우가 아닐까. 또래보다 작고 동그란 얼굴에 항상 멍한 표정으로 있는 동춘 캐릭터를 너무나도 완벽하게 소화해 낸 박나은 배우는 만분의 일에서 찾아낸 보석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박나은 배우의 멍한 표정은 누구나에게 궁금증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한 얼굴로 영화 속 동춘 그 자체였다.

영화는 SF적인 상상력과 대한민국의 사교육 현실을 꼬집은 블랙코미디로 동화같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서늘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전해준다. 그러나 사교육에 대한 직접적인 문제의식을 들여다보기보다 이를 판타지적으로 풀어나가는 영화는 오히려 해학적이며 밝다. 서울대를 나왔지만 자연인으로 사는 삶을 선택한 동춘의 외삼촌 영진, 대기업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평범한 가정주부의 길을 가게 된 엄마 혜진, 모두들 ‘인생이란 정답이 없다’는 가정하에 살고 있다.

하지만 11살 어린 동춘은 ‘왜 이걸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한 답을 어른들은 말해주지 않지만 막걸리는 알려준다.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영화‘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막걸리마저도 연기를 하게끔 한 아주 독특하면서도 발랄한 영화다. 거기에 결코 가볍지 않은 사교육 현실에 놓인 아이들의 고충까지 골고루 혼재시킨 ‘말이 안되지’만(외삼촌 영진의 “말이 안되잖아”라는 대사처럼) 말이 될 수도 있는 대한민국 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시킨 영화임에 틀림없다.

오늘부터 나도 막걸리를 마시는 것에 급급하기보다는 막걸리 통에 가만히 귀를 대봐야겠다. 혹시 인생의 해답을 알려주지 않을까?

*정주미=일본 메이지가쿠인대학 대학원 예술학 영상학과 박사. 전 광주독립영화관gift부관장·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