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새벽에 나와도 헛걸음만 하는 날이 더 많아요. IMF 외환 시기보다 더 일감이 줄어 죽을 맛입니다.”

16일 오전 5시께 광주 동구 산수동 한 인력대기소 앞은 칼바람이 부는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30여명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여 있었다.

추위를 막기 위해 이들은 두꺼운 외투와 목도리, 장갑으로 중무장했고, 인력사무소 앞 인도에 피워놓은 모닥불을 쬐며 “오늘은 꼭 일자리가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일감 배정 시간이 다가오자 인력사무소 바깥에 있던 일용직 노동자들이 하나 둘 사무실 내부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뒤늦게 서둘러온 노동자들은 숨을 고르며 좌석에 앉았다. 이후 상담원들은 현장으로 나갈 일용직 노동자의 이름을 부르며 현장을 배정했고, 일감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하지만 이날 일감을 배정받은 노동자는 45명 중 20명으로, 이른 새벽부터 일자리를 찾기 위해 모여든 노동자 모두 근무지로 향하지는 못했다.

현장 배정이 끝난 뒤 인력사무소 내부는 무거운 적막감이 흘렀고, 일자리를 받지 못한 근로자들은 상담원에게 “내일은 꼭 일자리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며 허탈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일감을 받지 못한 김모씨(50)는 “10년 전만 해도 일주일 중 5일 이상 현장에 나가 일했지만, 코로나19 이후 건설업계가 무너지면서 지금은 주 2~3일 일하면 많이 나가는 편이다”며 “광주지역 건설업계는 IMF 시절보다 경기가 더 안 좋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이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용직 노동자는 매일 새벽 직장이 결정되는데, 오늘처럼 일자리가 없으면 어떻게 하루를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성모씨(58)는 “요즘 일거리가 워낙 없어서 며칠째 헛걸음 하고 있다. 겨울이라 춥기도 하고, 설 명절도 다가오는데 오늘도 일을 못나가 걱정이다”며 “설 명절에 집에 내려올 손주들에게 단돈 몇만원이라도 쥐어주고 싶은데 내일은 꼭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인력사무소를 찾은 지 5일 만에 일을 나가게 된 김모씨(58)는 “최근 일거리가 없어 너무 힘들었는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며 “설 명절을 앞두고 건설업 불황이 빨리 풀려 꾸준히 일을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자재값 상승과 고금리, 대출 규제 등 여파로 건설 경기의 불황이 지속되면서 인력시장에 한파가 지속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 등에 따르면 지난해 광주지역 종합건설사 폐업신고는 62건에 달했고, 전년 대비 51% 늘었다. 전국에서는 서울(135건)과 경기(66건)에 이어 3번째로 높았고, 철근과 시멘트 등 주요 건축 자재 가격이 지난해보다 3.9% 증가했다.

건설업계는 경기 불황의 가장 큰 원인으로 발주물량 감소 등을 꼽았다.

지난해 11월 기준 광주지역 건설수주액은 1,189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62.9%(2,020억원) 감소했고, 전남 건설 수주액은 8,535억원에서 4,515억원으로 47.1% 줄었다.

건설 경기 악화로 일용근로자 취업자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광주지역 일용근로자 취업자 수는 2만 9,000여명으로 전월 대비 1,000여명 줄었고, 같은 기간 전남은 2,000여명 감소했다.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건설업 기초 안전보건교육 이수증’이 필요하다. 이수증은 고용노동부 위탁교육을 4시간 수강하면 발급받을 수 있다.

건설업 기초 안전보건교육 이수증이 있더라도 초보자나 조공, 잡부가 일을 구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인력사무소 소장 A씨는 “건설업 경기 불황 이후 이수증이 있어도 신규 일용직 근로자를 받기는 힘든 상황”이라며 “10년 이상 경력자들도 일주일 이상 일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동산 경기도 안 좋고 탄핵 정국 때문에 건설경기가 더욱 얼어붙었다”며 “지난해 이맘땐 81명이 방문해 72명이 일감을 받았지만, 코로나19 이후 60% 이상 일자리가 줄었다”고 말했다.

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