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물전 좌판에 간고등어가 떡 하니 자리하고 있다. 결코 밀리지 않겠는다는 듯 한물간 시절이 상석을 차지하고 있다. 벌어진 간고등어의 입에서 망상과 혼돈이 흘러나오는지 비린내가 가득하다. 소금에 절여진 저 망상이 없었다면 간고등어는 이미 심해의 무덤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상어에 쫓겼을 어둑컴컴한 길이 등줄기에 푸른 멍으로 빽빽하다.

같은 동네에 살았던 그 선배도 사람들의 무시 속에서 슬픈 벼랑길을 푸른 멍으로 새기며 버티었을까. 아니면 마음에 숨어든 비릿함을 소금으로 절이며 짜디짠 숨으로 이겨냈을까. 그는 어려서부터 약간 모자란 사람으로 여겨지면서 비웃음을 샀다.

이따금 제사를 지내는 날에는 자신의 푸른 멍이 뇌랗게 변색이 되어 한물가기 시작했는지 이상한 행동들을 했다. 잘 차려진 제사상 옆에 개다리밥상을 가져와 자신만의 제사상을 따로 차렸다. 간고등어의 옆구리가 터지면서 속엣말이 쏟아지듯 자신이 차린 제사상 앞에서 눈을 감고 연신 뭐라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푸른 멍의 말들이 뚝뚝 끊기며 사라질 때까지 그의 중얼거림은 끝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치성을 드리지 않으면 귀신이 젯밥을 먹지 않고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가 버린다고 했다.

그는 매사에 확신에 차 있었으며 즐거워했다. 언제부터 그의 몸에 푸른 멍이 서식했던 것일까. 푸르다는 건 비웃음의 바다를 건너온 파란 안식 같은 것일까. 싱거우면 지상의 것들은 다 물러지고 썩기에 소금기 가득한 비웃음과 무시를 한 포대기씩 등에 지고 살아갔던 것일까. 그의 웃음 속에서 문득 절망이 덮쳐 와도 한 생을 저렇게 속까지 비운 간고등어처럼 짜고 가볍게 살아도 괜찮을 듯싶었다.

한 번은 그가 내 직장을 찾아왔다. 그런데 들어올 때 아주 특이한 행동을 했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나 볼 수 있는 큰 명찰을 왼쪽 가슴에 달고 들어왔다.

‘000 동네 형 000’

이 명찰을 보고 수위 아저씨는 어리둥절해했다. 왕소금 같은 흰빛의 종이가 염전처럼 빛났다. 나의 생을 푹 삭여도 될 만큼 종이 염전은 크고 눈부셨다. 그는 그 명찰 덕분에 헤매지 않고 올 수 있었다며 웃었다. 순간 그의 푸른 멍이 시간의 비늘이 벗겨져도 재밌게 살 수 있는 푸르스름한 감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와 그의 아내를 만났다. 그는 앞뒤 맥락과 상관없이 자기 아내를 칭찬했고 맞장구치며 동문서답했다. 선배 부부는 연신 깔깔깔 웃으며 다정한 마주 보기로 한몸을 이루고 있었다.

어물전에서 간고등어를 산다. 한물간 생(生)일지라도 즐겁게 살았다는 듯 비린내마저도 환하게 다가온다. 고향의 그 선배처럼 약간은 모자라 등줄기가 푸르다 못해 뇌랗게 변색되었어도, 여기까지 달려온 바다의 뒤안길이 아름다워, 퇴색도 즐거운 안색처럼 멋져 보인다. 문득 나도 소금에 절여진 아픔을 등에 지고도 아름다운 변색, 그 선배의 즐거운 다가섬처럼 꽃피어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잠시 물어본다.

주부들이 간고등어를 사고 있다. 폐기된 계절 속에서도 아름다운 변색을 꿈꾸며 푸른 환상처럼 살았을 한 움큼의 바다를 밥상에 올리고 싶은 것일까. 간고등어가 봉지에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