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집 뒤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놋쇠 물고기를 매단 작은 종이 보인다. 바람이 분다. 얼기설기 얽힌 허공의 사슬을 푸느라 한 바구니의 바람이 철퍼덕 쏟아지며 놋쇠 물고기를 건든다. 허공 수면에 파문 일으키며 담장 너머로 댕그랑 댕그랑 풍경 소리를 나르는 놋쇠 지느러미가 반짝 빛난다. 맑고 청량한 소리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저 물고기는 처음부터 손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서 소리의 방으로 들어앉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해일처럼 덮쳐 오는 아픔 때문에 허공의 바닷가로 밀려나다가, 그 끝자리에서 놋쇠 종 안으로 들어앉았을 것이다.

메마른 허공의 바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놋쇠 물고기처럼, 종교 시설로 돌아가지 못한 그녀도 자신의 놋쇠 종 같은 새로운 곳에서 인생을 다시 펼쳐 나갔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어느 종교에 귀의하여 그 종교 시설 안에서 생활했다. 몸이 약한 탓에 자주 집으로 돌아와 요양을 하다가 다시 돌아가곤 했다.

어느 날 길을 건너던 그녀는 대형 트럭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끼이익, 펄펄 끓는 속도를 토해내는 비명 소리에 깜짝 놀란 한낮은 횡단보도 밖으로 튕겨 나가며 붉은 울음 쏟아냈다. 독니를 드러낸 폭력적인 오후의 물살이 내일로 가는 그녀의 안색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교통사고라는 거대한 해일, 그 급류에 휩쓸리며 생의 끝자리까지 떠밀리면서 그녀는 사경을 헤맸다.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뇌손상과 허리 부상은 쉽게 낫지 않은 채 퇴원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또다시 영업용 택시에 치이는 불행을 겪었다.

그녀의 삶에 어떤 아찔한 절벽이 끼어든 것일까. 한 발짝만 더 내디디면 두 손으로 얼굴 가린 절망이 어두컴컴한 벼랑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다며 그녀는 울었다. 피와 살과 희망이 뭉텅뭉텅 빠져나간 그믐달처럼 그녀는 병원 침대에서 야위어갔다. 그녀의 몸 바깥으로 봄날은 속절없이 피었다 지고 함박눈은 펑펑 내리다 사라졌다. 그렇게 상한 지느러미로 유영하는 계절이 쌓여만 갔다.

언젠가부터 그녀는 각종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생의 끝자리에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어떤 다짐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만의 종소리로 둥글게 파문 이는 울림을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자신의 수심이 깊을수록 상대의 심해 속 아픔을 헤아릴 수 있기에, 그녀는 그녀의 고통을 꺼내 놓으며 이웃에게 다가갔다. 반짝이는 바다의 기억을 공중에 풀어놓는 놋쇠 물고기처럼 그녀는 자신의 절망과 희망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손재주가 좋은 그녀는 여러 자격증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켜켜이 삼킨 슬픔으로 그녀 마음의 놋쇠 종을 치면서 상대에게 가 닿을 수 있도록 소리의 지층을 높여 갔다.

찻집 뒤란의 놋쇠 물고기는 허공에 마른 바다 풀어놓고 댕그랑 댕그랑 철썩이는 파도, 그 맑은 소리를 불러오고 있다. 울음의 뼈로 빚은 그녀 마음의 놋쇠 종에서도 저렇게 맑은 소리가 났을 것이다. 저 높은 곳에 맑은 소리의 방을 짓기 위해 그녀는 비늘이 헐고 지느러미가 찢기는 날들을 묵묵히 견뎌냈다. 지상의 아픈 간격을 메우는 풍경 소리로 서녘 하늘이 붉다. 저녁을 어루만지는 소리가 댕그랑 댕그랑 따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