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는 동안 숱하게 부딪치는 선택의 순간들 앞에서 늘 가슴 떨리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엄마가 좋으니? 아빠가 좋으니?”

손가락 서너 개로 겨우 나이를 꼽던 코흘리개였지만 질문하는 어른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어쩌다 생긴 용돈으로 군입정 거리를 고르는 일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하굣길 내리 입에 물어도 그대로일 것만 같았던 커다란 눈깔사탕, 깨와 김이 솔솔 박힌 센베이, 고소한 땅콩엿 등은 한 가지만을 골라야 하는 아쉬움에 고여 오는 침을 아무리 삼켜대도 만만치가 않았다.

학창 시절, 4가지 중 하나의 답을 고르는 시험 또한 얼마나 피를 말리는 일이었던가. 그렇게 시작된 선택의 순간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평생을 따라다녔다. 가야 할 학교의 선택, 학과의 선택, 직업의 선택, 배우자의 선택, 심지어 끼니마다 오르는 식탁 메뉴 선택까지도 끊임없이 고심하게 만들었다.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공평과 존중의 의미가 담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의 책임감이 동반하기에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다. 어긋난 선택으로 맺어진 부부의 연은 상처투성이의 인생을 만드는가 하면, 맞지 않는 직업의 선택은 평생 고달픈 삶으로 이어지게 한다.

결정 장애라고도 할 만큼 소심한 성격 탓에 선택의 순간을 두려워하는 병이 있다. 사소한 일에도 동조자를 구해서 결정을 내려야만 안심이 되는가 하면, 결단의 순간에 임하면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까지 두근거린다. 선택되는 쪽보다는 낙오의 대상에 대한 연민 때문에 늘 마음이 편하지 않다. 선택의 대상들은 대개 엇비슷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난감하게 할 때가 많다.

어른들의 선택에 수긍하고 따르면 그만이었던 일들이 세월과 함께 연장자로서 선택의 결단을 내려야 할 일이 많아졌다. 그때마다 좀 더 용기 있는 결단을 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정해 놓은 기준이 있다. 넓게 펼쳐진 쉬운 길과 좁다란 오솔길 중, 무턱대고 크고 쉬운 길만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큰길을 택할 때도 다시 한번 생각의 문을 조용히 두드려 본다. 오솔길엔 헤쳐나가야 할 가시덩굴뿐만이 아니라 산새들의 고운 노랫소리도, 맑고 시원한 바람도, 붉게 익은 산딸기를 따 먹는 즐거움도 함께할 수 있다는 걸 시행착오 끝에 알게 되었다.

인간과의 인연 역시 선택으로 맺어지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 한데 그 숱한 인연 중 혈연, 즉 부모, 형제의 연은 선택 여지가 없는 천륜이라고 한다. 거스르면 천벌을 받는다는 하늘의 선택이기에 스스로 깰 수조차 없는 숙명적인 인연…. 부쩍 그 천륜에 금이 가는 소리가 세상을 아프게 하고 있다. 숭고한 인연으로 찾아왔지만, 출생신고조차 못해보고 부모에 의해 스러진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천지에 맴도는 것만 같다.

폭우와 폭염의 천재지변에도 변함없이 흔연한 푸르름으로 제빛을 발하는 산천초목들이 가히 경건하기까지 하다. 과연 우리는 부여받은 선택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되짚고 되짚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