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語)은 상대방의 귀에 다다르기 전에 자신의 각도를 먼저 잰다. 입안에 있을 때부터 말은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혀 위에서부터 각도를 재기 시작한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복종을 요구하는 말은 90도 각도의 거만함이 혀에서부터 숨어 있다. 90도로 허리 숙이는 조직폭력배의 인사처럼 그 말에 실린 복종이 부당해도 상대방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

내 인생을 뒤돌아보면, 90도 각도의 거만함이 깃든 말에 늘 민감하게 반응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숙제는 저녁밥 먹은 후 7시부터 8시에 하라고 지시했다. 내 맘대로 숙제하고 싶을 때 하고 놀고 싶을 때 노는 게 좋았던 나는 아버지와 이 문제로 자주 언쟁을 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무조건 당신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고 했고, 나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다. 나의 목소리는 저녁의 난간에 매달렸다가 바람벽 타고 화살처럼 날아가 아버지 가슴에 적중했다. 화가 난 아버지는 회초리를 들었다. 저녁의 여린 살점을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 냉담한 독선 앞에서 내 종아리는 늘 멍이 들었다. 지시의 바깥으로 망명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종아리가 아파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지인이 선물처럼 받은 친절을 얘기해 주었다. 그는 급한 일을 처리하다가 약속 시간에 맞춰 나가기 위해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고 했다. 시내버스를 탄 후 버스비를 내려는데 그때서야 지갑을 챙기지 못한 사실을 깨달았다. 가방과 주머니를 뒤져봐도 동전 하나 나오지 않아 당황했다. 동전 몇 푼에 당혹스런 마음의 풍랑이 일더니 순한 대낮이 뒤집혔다. 가방을 샅샅이 뒤져 볼수록 출렁이는 불안에 떠밀린 오후는 암초에 걸려 좌초되어 갔다. 손에 잡히는 빈 그물 같은 먼지만 끌어올리면서 발만 동동거렸다. 우왕좌왕하는 그에게 어느 여자 승객이 다가왔다.

“버스비 제가 내드릴게요.”

그녀의 말에서 따스한 45도 각도가 보였다. 보통 45도 각도의 인사는 깊은 감사나 진심이 담긴 사과를 전할 때 하는 정중한 인사법이다. 그만큼 45도 각도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과 따스함이 들어 있다.

문득 내 입속에서 튀어나온 말들은 몇 도의 각도를 지니고 있는지 궁금했다. 화를 참지 못해 일명 ‘버럭쟁이’인 나는 감정의 변두리를 조심스레 둘러보는 법도 없이 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180도 각도의 말들을 쏟아낸 적이 많았다. 화를 내도 뒤끝이 없다는 직선의 소통 방식이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에둘러 말하는 곡선의 방식보다 낫다고 여겼다. 하지만 팽팽하게 잡아당기다가 끊어진 고무줄의 줄처럼 ‘버럭’의 말은 분노라는 감정의 힘을 최대치로 팽창시켜,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상처를 주었다.

오래전에 자식들과 여행 간 어느 바닷가에서 다리를 다친 나에게 손녀가 한 말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내가 호~ 해줄까?”

45도 각도의 따스한 손녀의 말에 다리 통증이 사라진 것 같았다. 손녀는 어떻게 말의 45도 각도를 측정했을까. 그러고 보니 봄날의 태양도 45도 각도로 햇살을 내보내고, 벚꽃도 45도 각도로 꽃잎을 열며 피어난다. 저 멀리서 45도 각도로 백색 갈기 세우는 파도가 손녀의 따스한 말처럼 밀려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