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영화씬에서 활동을 시작할 무렵 익숙한 얼굴과 마주한 적이 있다. 전남대 일어일문학과 대학원 시절 T.A(teaching assistant)를 할 때 학부생 T.A였던 그녀. 광주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현옥 감독이다.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낯선 집단에서 15년이나 지나 다시 만났다. 그녀는 영화감독으로 나는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말이다.

이 감독은 뉴욕필름아카데미에서 사진, 영화제작 수료 후 ‘시간의 축적으로 공간에 새겨진 기억과 역사’에 관한 주제로 작업을 이어왔다. 2013년 ‘레트로 광주’ 2019년‘반영’ 사진 전시회를 고향인 광주에서 열기도 했다. 2019년에는 단편극영화 ‘오드 피쉬’(2020)를 연출했으며 ㈔광주영화영상인연대 광주영화학교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수강하고 광주에 관한 새로운 시각의 영화를 기획, 다큐멘터리 ‘기억의 집’을 제작했다. 영화는 지난해 목포 묵포국도1호선 영화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지역영화 쇼케이스 섹션에서 상영됐다.







●사진을 보며 기억 더듬다

너무나 익숙한 공간, 그러나 조금은 낯선 영화 기법들 . 다큐멘터리 영화‘기억의 집’은 이 감독의 생일 이틀 전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치는 추모 영화다. 사적 다큐멘터리가 그러하듯 영화는 감독의 내레이션을 통해 비밀스런 가족사를 차분히 풀어내려간다.

다큐멘터리 영화 ‘기억의 집’ 제작 배경은 이 감독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우연히 꺼내든 앨범에서 발견한 자신의 유년 시절 사진에서 시작됐다.

이 감독은 사진 속에 등장하는 어린시절 살았던 집과 주변 공간을 찾아다니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광주 곳곳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감독의 카메라 시선을 통해 부모님 신혼 집, 이 감독이 태어나고 살았던 집, 삼 남매가 아웅다웅 함께했던 집 등을 쫓다 보면 어느 새 70~80년대 광주의 번화했던, 지금은 구도심이 된 동네들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다.

지산동을 시작으로 구동, 서동, 사직동, 월산동, 그리고 두암동까지 공간의 행적은 이 감독의 비밀스런 가족사부터 이젠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동네의 지난 역사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그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파독 간호사,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 파견 등 대한민국 격동의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등장하는데 교과서에서나 봤을 법한 지난 역사를 되짚어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1980년 5월 광주에 도달한다.

이제는 사라져 광주 불로동의 텍사스촌, 충장로와 금남로의 역사, 광주공원에만 즐비해 있는 포장마차촌이 전에는 동구의 여러 동에 운집해서 장사를 했었다는 이야기 등 지금의 세대는 알지 못하는 광주라는 공간을 미시적인 관점에서 들려준다.

하지만 감독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5·18에 관한 이야기는 전경화시키지 않는다. 영상 안에 1980년 광주의 역사는 스며들어 있을 뿐이다.

이 감독은 자신의 어릴 적 과거를 쫓아 사라져 버린 공간들을 찾아가는 행위를 이제는 사라져 가는 극장을 연구하는 연구자의 모습과 귀결시킨다.

사라져 버린 광주천을 따라 즐비했던 극장의 터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됐다.

이 감독은 마지막으로 생존해 있는 구도심을 카메라에 담는다.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구 도청의 분수대의 모습이 담긴다.

‘기억의 집’은 공적인 기억보다 사적인 기억에 의존해 모든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를 보다 보면 결코 사적 기억 안에서 공적 기억은 배제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족의 비밀스런 사적인 이야기들을 쫓다 보면 어느새 대한민국의 역사, 광주의 역사와 맞닿아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연구자 이승민은 “한국 다큐멘터리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전환점을 맞는다”며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개인의 관점에서 역사를 마주하는 감독 개인의 가족사와 시대사를 직접 연결시키고 접속하는 ‘가족사-역사’ 다큐멘터리 영화 등장이다”고 말했다.

기존 계몽적 성격과는 다른, 개인의 시각 즉 감독이 ‘나’라는 인물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것이다. ‘가족사-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나’와 ‘가족’과 ‘역사’가 긴밀하게 연결돼 역동적으로 기억을 생성하는 장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현옥 감독의 ‘기억의 집’은 가족사진을 통해 주변부를 세심히 관찰하며 광주라는 도시의 공간과 일제강점기부터 80년대 그리고 현재까지 광주의 역사를 기록했다.

개인의 사적 자료가 모여 하나의 공적인 기록이 될 수 있다는 가족의 사진에 담긴 가족의 기억들이 시대의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시도를 과감히 보여준 셈이다.



●광주에서‘홋카이도’로

이 감독은 일본 훗가이도에 있다. 이 감독이 일본에 머물게 된께기는 올해 초 ‘기억의 집’ 후속 작품을 위해 홋카이도로 떠나면서다.

이 감독은 훗가이도 지역신문에서 ‘함께 영화를 찍을 동료를 찾는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일본인 고마치(小町프로듀서와 인연을 맺었다. 고마치의 추천으로 이 감독은 일본 홋카이도 시라오이 지역 ‘시라오이 숏츠 숏츠’단편 다큐멘터리 영상작가에 응모했고 당선됐다.

‘시라오이 숏츠 숏츠’는 단편 영상작가를 선정, 시라오이 지역의 특색이나 일상적인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내 시라오이 예술제에서 상영하는 홋카이도 시라오이 지역의 예술축제 공모사업이다.

이 감독은 시라오이 마을의 노포 ‘찻집 휴양림’을 소재로 아이요시 마사아키(85), 쿄코(84) 노부부의 삶과 신념을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현재 공기획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최근에는 홋카이도 지역 신문에 이 감독의 사연이 보도되기 도했다.

해당 언론사에서는 한국 광주 출신의 다큐멘터리 감독이현옥 감독이 시라오이 지역 이야기를 담은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있다는 기사를 대대적으로 다뤘다.

이 감독이 제작한 영화는 9월 개최되는‘시라오이정 루츠 & 아츠 2024’시라오이 축제에서 9월 20일부터 상영될 예정이다.

작품이 끝나면 이 감독은 일본 어학연수 중 홈스테이했던 가정의 노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차기작에 몰두할 예정이다.

광주 지역 감독에서 이제는 해외로 그 영역을 확장 중인 이현옥 감독. 그녀의 앞으로의 행로가 더욱 기대된다.

이현옥 일본신문기사

기억의 집 1

기억의 집 1

기억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