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한 민간인이 학살당한 ‘여수·순천 10·19사건’의 조사기한을 최대 2년 연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부실 조사와 역사 왜곡 논란 등으로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 작업이 미진하다는 지적을 받았으나 조사기간이 연장되면서 국가 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희생자와 유족들이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될 전망이다.

11일 여순10·19항쟁전국유족총연합과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여순사건위) 등에 따르면 여순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여순사건법 개정안)이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순사건법 개정안은 △위원회 구성 시 국회 추천 인사 4인 포함 △진상규명 조사·분석 기간 1년 연장(필요시 1년 추가 연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재심 청구가 불가능했던 희생자 중 객관적인 자료로 여순사건과 관련된 형사 처벌 사실이 확인되면 특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진상 보고서는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고, 필요에 따라 작성 기한을 6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2022년 출범한 여순사건위는 올해 10월 5일 2년간의 공식 조사활동을 마쳤으나 이원화된 조직구조와 진상보고서작성기획단 뉴라이트 극우성향 인사 편중 등 문제로 진상규명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순사건위 활동 기간 접수된 피해사례는 총 7,546건으로, 이중 희생자 결정 심의가 최종 완료된 건은 708건(9.4%)에 불과했다. 신청자 1인당 여순사건위 계류 기간은 평균 222.2일로, 여순 특별법 시행령에 명시된 ‘90일 이내’ 처리 기한을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특별법 개정으로 조사기간이 최대 2년 연장됨에 따라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희생자·유족 심사·결정과 역사 왜곡 등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뉴라이트 극우성향 인사로 편중된 진상보고서작성기획단 임기가 내년 4월까지라 그사이 역사 왜곡 등 정치적으로 편향된 보고서가 작성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작성기획단 13명 가운데 위촉직이 8명으로 이중 5명이 국방부 전·현직 관계자로 가해자(군·경) 측 입장을 대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여순사건 유족들은 기획단 구성원 다수가 극우 인사들로 편중돼 있고,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규정하는 등 편향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여순사건 유족회와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여순사건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에 환영의 입장을 밝히면서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해선 재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형용 여순10·19항쟁전국유족총연합 대변인은 “여순사건위는 법 개정으로 존속 기한이 연장될 것을 예상했는지, 희생자·유족 결정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매년 위원회 파견직 직원 50% 이상이 인사이동 되면서 업무 공백이 발생한다. 안정적인 조직 운영을 위해 파견직 직원은 장기 근무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순천YMCA 관계자는 “현재 2기 여순사건위 위원들은 미진했던 진상규명에 대해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해야 한다”며 “보수 편향 인사로 채워진 여순사건 진상 보고서 작성 기획단도 보고서 작성 시도를 당장 중단하고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순사건 역사왜곡 저지 범국민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1948년 첫 비상계엄으로 국가 폭력에 희생당했던 여순사건 피해자들의 원혼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76년 전 역사의 아픔이 다시는 이 땅에서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며 “편법과 탈법적인 여순사건위의 활동에 대해 간과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그런 시도를 한다면 법적인 책임도 물을 것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