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9, 8, 7, 6, 5, 4, 3, 2, 1, 해피뉴이어!”

라고 외치면서 따끈따끈한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며 당당히 주점에 입장하는 갓 스무살 청년의 잔뜩 신이 난 표정들, 신년에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그러나 올해는 그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제주항공 참사로 전 국민이 슬픔에 잠긴 애도의 시간, 타종식 등 신년 행사들도 줄줄이 축소되거나 취소되고 어느 때보다 침울한 새해를 보내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을 잃은 슬픔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겠는가. 참사로부터 열흘도 더 지난 지금도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 않다. 새해 인사마저도 조심스러운 엄숙한 시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어디 말 못 할 또 다른 침울함을 앓고 있다.

늘 북적북적하던 식당가들에 빈자리가 너무나도 많다. 거리를 다니는 시민들도 어느 때보다 적은 요즘이다. 요식업계뿐만이 아니다. 모든 시장이 위축됐다. 4대 경제연구원장은 지금을 경기침체와 싸울 때라고 말하고 있다. 세금 감면이나 지원금 같은 미봉책보다 구조조정 등 장기개혁에 집중할 때라며 정부 전망치보다 낮은 올해 경제성장을 전망했다. IMF 외환위기 같은 진단을 하는 지금,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가.

사실 지금의 불경기는 참사로 인한 애도 기간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늘 녹록지 않았지만 본격적인 불경기는 지난해 12월 3일이 그 시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삼중고로 고통받던 국민은 비상계엄과 함께 ‘비상 경기’를 마주했다. 1,470원까지 치솟은 원달러환율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엄중한 시기로 소비심리는 위축되고 외출도 자제하게 되는 분위기가 그대로 새해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안 난다는 게 기분 탓이 아니었다.

“밥 먹고 탄핵합시다.”

송년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는 위기를 보며 민주당은 적절한 슬로건과 캠페인을 제시했다. 국가적 위기가 민생까지 타격을 줘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었다. 그러나 이미 위축된 심리는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지역구 상가에 인사를 다니면 사장님들께서 요새 고생이 많다고 다독여주시면서 코로나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고들 말씀하신다.

돌이켜보면 코로나 시국은 전 세계적 위기였고 말 그대로 재난이었다. 5인 이상 집합 금지와 다중이용시설 9시 영업 제한은 소비자에게도 업주에게도 청천벽력 같은 조치였다. 당시 2년간 폐업점포 재도전 장려금 지급이 30만 건이 넘는 것만 봐도 얼마나 힘든 시기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코로나 시국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적인 재난에 의한 불경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불경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생회복 지원금과 지역사랑 상품권과 같은 정책금융보다 시장에 도움이 되는 건 안정적인 정치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외출을 하고 바깥 활동을 해도 괜찮다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민생을 살리는 길이라는 걸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국민의 현실을 두고도 윤석열과 정부여당은 자리 지키기에 급급하다. 민생이 이런데도 생업을 제쳐두고 광장에 나와 외치는 국민은 무시한 채 한남동을 철옹성으로 만들고 악착같이 버티고 있다. 본인들의 행위가 재난보다 더 무섭게 소비 욕구를 저하시키고 있는 줄 모르는 듯하다.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얼토당토않은 명분인 야당의 민생예산 삭감은 정말 내란의 명분에 불과했던 걸 스스로들 증명하고 있다. 이제 좀 순순히 잡혀가 국민 모두 일상을 되찾게 만들어줘야 한다.

많은 눈이 내린 날, 아내가 운영하는 카페 앞 눈을 쓸고 있는데 옆집 계절 음식점과 앞집 닭요리 음식점 사장님들이 나와서 제설제를 뿌려주시며 거들어주셨다. 한산한 거리와는 달리 이렇게 시민들은 여전히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있다. 탄핵 집회에서도, 참사가 일어난 공항에서도 국민은 나눔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북돋았다. 이제는 그런 국민들께 걸맞은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 2025년은 정권 교체의 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