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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열정…광주 공동체 일군 진취적 발자국 따라 걷다
광주여성가족재단·전남매일 공동기획-길에서 만나는 광주여성 100년의 역사 ①그 여성이 흘렸던 눈물을 기억하는 일

2025. 03.05. 18:38:34

광주여성가족재단은 지난 2022년부터 광주여성 근대역사탐방로 ‘광주여성길’ 도보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광주여성길 도보투어에 참가자들.

‘광주여성길’은 지난 2022년부터 광주여성가족재단이 운영하는 광주여성 근대역사탐방로 이름이다. 두홉길, 백단심길, 홍단심길 등 3개 코스 도보투어를 통해 광주여성 백년의 역사를 만나는 길이다.

‘길 위의 길, 발자국 위의 발자국’이라는 모토가 말해주듯이 우리가 걷고 있는 수많은 길을 이미 걸었던 선배 여성들의 삶을 기억하고 조금 더 나은 삶으로 뚜벅뚜벅 나아갔던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발자국을 기억한다는 취지다.

길을 연지 불과 3년차지만 이미 전국에서 찾는 여성길 선진지가 됐다. 무심코 지나쳤던 장소 속에 광주여성이 있고 그 여성의 헌신과 열정으로 현재의 나와 공동체가 있다.

근대여성교육과 항일운동에 헌신했던 이들로부터 광주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이들, 최초 근대적 직업을 가진 충장로 여성들까지 총 16회에 걸쳐 그 삶을 만나본다.

편집자주



‘뼈를 녹여 소금꽃을 피웠다 -광주여성생애구술사1 방직공장 노동자편’표지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를 설명하는 단어로 ‘젠더갈등’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단어는 정확한 의미와는 다르게 주로 성평등에 대한 불편한 감정과 페미니즘 혐오를 표현하는데 쓰인다. 성평등은 여성들만을 위한 편협한 가치관이며 페미니즘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여성들의 이기적인 작태를 합리화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는 대한민국이 이미 남녀평등한 사회가 됐으며 어떤 부분은 여성들이 더 우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전제돼 있다.

이것은 사실 몰역사적 사고라 할 수 있다. 성평등이 여성들만을 위한 가치관인지는 근대 여성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확인할 수 있어서다. 남녀가 평등하다는 신념 하에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이 공동체의 안녕과 진보에 얼마나 헌신했는지가 절절히 드러난다.



2025년 광주여성길 도보투어 웹자보
● 서서평 선교사·조아라·김함라·김마리아·윤형숙 열정 감동

푸른 눈의 광주여성이라 불리는 선교사 서서평은 글자를 모르던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근대 여성교육의 문을 열었다. 광주지역 가난과 문맹을 퇴치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던 사람이다.

근대적인 여성리더 모델 조아라는 창씨개명과 신사참배에 반대했던 항일저항운동가였으며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공권력의 공백 상태에서 전쟁고아를 위해 헌신한 개혁가다.

3·1운동에 참여해 고초를 당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김함라나 김마리아, 윤형숙 또한 “여자라고 나라 사랑 모를쏘냐”라고 외치며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기꺼이 독립을 위해 일어섰던 광주의 여성들이다.

광주공동체가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는 이런 여성들의 헌신과 열정이 있었다. 그들이 처한 사회적 조건이 지금과는 다르지만 그들은 자신이 사는 세상에서 차별받는 이들을 위해 온 생을 다했다.

이름조차 갖지 못한 여성들에게 이름을 주고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있는 힘을 줬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에게 직업교육을 시켜 먹고 살게 해줬다. 조혼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일깨워 조금 더 평등한 부부관계에 대한 인식을 심어줬으며 공창제하에서 착취당했던 성매매 여성들에게 자활의 기회를 제공하며 내일의 삶을 꿈꾸도록 했다. 어찌 여성들만을 위한 일이며 여성들만 누리는 특혜일까. 비천하고 나약했던 한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읽고 쓸 수 있게 되면서 흘렸던 눈물이 어찌 그 여성만의 것일까.

그동안 우리 역사는 이런 여성들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다. 여성의 경험과 삶을 사소하고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 공식 기록에서 배제하고 비가시화해 왔다. 그렇기에 그동안의 역사가 ‘누구의 역사인가’라 묻지 않을 수 없다. 기록되지 않은 여성들의 삶을 발굴하고 조명해내는 일은 공동체 역사에서 비어 있는 부분을 완성시키는 일이자 공동체 역사 자체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가치와 비전을 만들어나가는 일이다.

광주여성길 두홉길, 백단심길, 홍단심길 코스


● 광주여성가족재단 2019년부터 광주여성역사 기록

이런 맥락에서 광주여성가족재단은 ‘광주여성사’ 통사와 ‘광주여성생애구술사’ 발간을 통해 지난 2019년부터 광주여성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 작업이 축적되면서 우리가 몰랐던, 혹은 알고 있으나 시민들과 공유하지 못했던 역사와 여성 인물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근현대 광주 역사를 뒤적거리다 보니 무심코 지나쳤던 장소에 얽힌 사건과 그에 연루된 여성들의 이야기에 놀랐고 왜 이런 역사와 여성들이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여성사 작업이 축적돼 감에 따라 이를 시민이 향유할 수 있는 뭔가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 건 당연했다.

시민 프로그램 기본 방향은 접근하기 쉽고 재미 있으며 가족이나 친구, 직장인 등 시민들이 동참할 수 있어야 했다. 광주 공동체를 일궈온 이들과 만남을 통해 결국 현재 이 도시에서 나의 삶과 공동체를 성찰하는 인문학적이고 문화적인 경험이어야 했다. 그래서 시작한 작업이 근대여성 역사탐방로 ‘광주여성길’이다.

가장 먼저 주목한 곳은 양림동이다. 양림동 일대는 광주 근대가 형성되기 시작한 장소성을 지니고 있으며 근대역사문화 근대시기 건축물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재단은 양림동 역사문화적 장소성을 활용하되 여성을 특화하는 서사에 기반한 탐방로를 설계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주요 인물들과 ‘최초’ 광주여성들이 활동했던 충장로를 연결하면서 광주여성길이 탄생했다. 두홉길과 백단심길, 홍단심길이 그것이다.

푸른 눈의 광주여성 서서평. 옥양목 적삼에 검정 통치마, 검정 고무신을 신은 검소한 모습이다. 출처=박선홍 ‘광주백년1’


● 광주여성길 모토 ‘길 위의 길, 발자국 위의 발자국’

광주여성길 투어에 참여한 한 시민은 “무수히 양림동을 걸었지만 이런 여성 인물, 이런 이야기는 처음 만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라고 물었다. 똑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사람과 다른 이야기를 만나도록 해주는 게 바로 새로운 관점이다.

그동안 봤던 것들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우리 안에 있었지만 발견되지 못한 것들을 비로소 만나게 된다. 광주여성길 모토가 이걸 말해준다.‘길 위의 길, 발자국 위의 발자국’. ‘길 위의 길’로 이끌어주는 이들은 역사문화해설사들이다.

광주여성길 서사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이 길에 포함된 장소와 여성인물의 생애에 대한 상당한 분량의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더 중요하게 성인지 관점과 여성사적 관점으로 이를 풀어낼 수 있는 역량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문화해설사 양성과정과 보수교육은 가열차고 촘촘하게 진행됐다. 전문해설사로 거듭나기 위한 공부와 자신의 앎을 고민하고 확장하는 도전을 피하지 않은 해설사들이야말로 역사를 기록하는 소중한 주체들이 아닐 수 없다. 해설사들이 풀어내는 광주여성길의 이야기를 본격 이어갈 예정이다.

근대 광주여성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특별히 잘나지도 않고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개인들이 만들어낸 집단적인 힘을 느끼게 된다. 그 개인들이 깨어날 때, 일어설 때, 행동할 때, 우리 공동체는 변화했고 역동했으며 진보해왔음을 알 수 있다. 깨어난 개인과 시민들의 힘, 그 힘이 우리 역사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 그 과정을 관통하며 여성들이 함께 했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공동체를 더 선한 곳으로 만드는 힘이라고 확신한다. 한 여성의 눈물이 우리 공동체 모두의 것이 된다는 건 그렇게 값진 일이다.

정미경 광주여성가족재단 사업운영실 차장(전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편집장·여성사전시관 학예연구실장·한국여성재단 편집위원)

이름도 갖지 못했던 여성들이 글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면서 일으킨 변화는 적지 않다. 사진은 근대여성교육의 요람이 된 광주수피아여고. 출처=박선홍 ‘광주백년1’
1950년대 양림동 일대. 중앙 우측에 보이는 수피아여고는 광주 최초의 여학교로서 근대여성교육이 시작된 곳이다. 출처=광주시청각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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