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는 ‘두홉길’이 있다. 두홉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곡식 수량을 나타내는 작은 단위다. ‘두홉길’은 다름 아닌 서서평 선교사가 남긴 광주의 유산이자 서서평의 발자취를 상징하는 말이다. 광주여성가족재단이 운영하는 도보투어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두홉길’은 단순한 도보투어가 아니다. 광주 지역 역사와 여성의 권리를 되새기는 여성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정신적 지주인 셈이다. 두홉길은 광주 지역의 근대 여성 역사와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프로그램이다. 광주여성가족재단이 여성사 작업을 축적하고 이를 시민들과 향유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1926년 여름, 2살짜리 양녀를 안고 있는 서서평 선교사. 출처=양창삼 ‘조선을 섬긴 행복’

●두홉길, 광주서 가장 먼저 개발된 여성역사 탐방로

‘두홉길’은 접근하기 쉽고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어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다양한 단위의 시민들이 동참할 수 있다. 단순한 관광 코스를 넘어 지역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여성의 권리와 자립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한다.

참가자들은 광주라는 공동체를 일궈온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도시에서 삶과 공동체를 성찰하는 인문학적이고 문화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두홉길’은 근대 여성 역사 탐방로인 ‘광주여성길’ 일환으로 광주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여성 역사 탐방로다. 양림동은 근대 역사문화와 근대 시기 건축물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광주여성가족재단이 이 지역 역사문화적 장소성을 활용하여 여성을 특화하는 서사에 기반한 탐방로를 개발했다.

핵심은 독일 출신 미국 선교사 서서평(1880~1934·본명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이다. 서서평 선교사는 22년 동안 한국에서 활동하며 여성들의 자립과 인권을 위한 사업을 펼쳤다. 그녀는 주목받지 못하고 이름도 없던 광주 여성들에게 이름과 직업, 꿈을 찾아줬다.

그녀의 삶은 단순한 성공을 넘어 섬김과 헌신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서서평의 삶은 ‘두홉길’ 탐방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영감을 주며 여성의 권리와 자립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한다.

양림동은 서서평 선교사 외에도 많은 여성들이 살았던 곳이다.

독신 여성 선교사인 엄언라, 유화례, 도마리아 등 선교사와 오웬 선교사의 부인인 화이팅 선교사, 어비슨 선교사의 배우자인 프란세스 선교사, 김필례, 조아라, 박애순, 윤형숙 선생 등은 모두 이 지역에서 활동하며 여성 교육과 인권 신장을 위해 힘썼다.

두홉길의 서서평 벽화.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라는 문구가 그의 삶을 대변해준다.

●낮은자들 섬기는 삶…근대 여성선교사 정신 귀감

화이팅 선교사는 서서평 선교사 한글 선생으로서 예배당이면서 근대적 문화공간인 오웬기념각을 짓는 데 기여했다. 오웬기념각은 서서평 장례식장이기도 했다.

유화례 선교사는 서서평 선교사를 존경하며 그녀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수피아여학교의 교장으로 많은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러한 노력은 광주 지역 사회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조아라 회장 또한 서서평 선교사를 존경하며 그녀가 세운 이일학교 선생으로 활동했다. 이일학교는 여성 교육 중요 거점으로 자리 잡았으며 조아라 회장은 김필례 선생님과 함께 신사참배로 폐교된 수피아여학교와 해체된 광주YWCA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성 교육과 인재 양성을 위한 성빈여사, 별빛학원, 계명여사와 같은 기관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양림동에서 활동한 여성들은 서로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며 광주 지역 여성 교육과 인권 신장을 위해 헌신했다.

‘두홉길’은 서서평 선교사의 삶과 광주 여성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재현하기 위해 조성됐다. 이 길을 걸으며 참가자들은 그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그녀들이 남긴 유산을 되새기며 여전히 필요한 여성의 권리와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두홉길’은 서서평 선교사 정신을 이어받고자 마련한 길이다.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나왔는데 이 영화는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Not Success, But Service)’라는 생활신조를 바탕으로 이야기 한다. 가장 낮은 자들을 섬기는 데 헌신한 서서평 간호선교사의 생생한 삶을 통해 진정한 섬김과 근대 여성선교사 정신이 무엇인지 이야기 한다.

서서평 간호선교사는 1880년 독일에서 태어나 9세 때 홀로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녀는 가톨릭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버림 받았고 이후 간호선교사의 자격으로 1912년 조선에 들어왔다.

두홉길의 선교사 묘역. 광주 근대 초기에서 선교사들은 여성교육과 의료, 가난 퇴치 등의 분야에서 많은 공헌을 했다.

양림동은 근대 역사물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사진은 양림동 광주기독병원교육재단 내 위치한 오웬기념각(1914년 건립).

● 아낌없이 내줬지만 정작 영양실조로 삶 마감

서서평은 광주 제중원을 비롯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간호원 훈련과 간호교과서 저술, 조선간호부회(현 대한간호협회) 창립, 10년간 회장으로 국제간호협의회 가입을 위해 노력했다. 배우지 못한 여성들을 모아 이일학교(현 한일장신대)를 설립하고 부인조력회(현 여전도회연합회) 조직 등 여성 계몽과 복음 전파를 위해 헌신했다.

그녀는 한국 사람들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고아와 거지, 한센병자들을 거두어 교육시키고 버려진 고아 13명과 한센병자의 아들을 입양해 친자식처럼 아꼈다. 서서평은 무명 베옷과 고무신 차림에 보리밥과 된장국을 먹으며 조선인처럼 살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가진 것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 내주고 정작 자신은 영양실조로 삶을 마감했다.

당시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었던 그녀는 시체를 해부해 연구자료로 삼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녀에게 남겨진 유산은 동전 7전, 강냉이가루(보리) 2홉, 걸인에게 주고 남은 담요 반 조각이 전부였다. 장례식은 광주 최초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졌고 참석한 1,000여 명의 조문객들이 “어머니”라고 목놓아 우는 통곡소리는 마치 비행기 소리와 같았다고 한다.

진정한 예수의 정신을 삶으로 실천한 서서평 간호선교사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에 의해 전 세계에 파견된 수많은 선교사 가운데 한국 파견 선교사로는 유일하게 ‘가장 위대한 선교사 7인’으로 선정됐다.

‘두홉길’은 서서평 선교사가 남긴 광주의 유산이고 발자취다. ‘두홉길’은 도보투어를 뛰어넘어 광주 역사를 온전히 지켜내고 서서평의 삶을 훑는 답사프로그램이다. 두홉길 탐방을 통해 서서평의 삶이 참가자들에 더 깊은 감동을 전해줄 터다. 그 안에서 광주의 나아갈 바가 짚어질 것으로 확신한다.

홍인화 광주여성길 해설사(북구여성행복응원네트워크위원장·광주시립미술관 명예도슨트·The1904공동대표·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

두홉길의 ‘두홉’은 서서평 선교사가 남기고 간 강냉이가루 두홉에서 따왔다. 자신의 모든 것을 광주에 주고 간 그의 헌신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