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지역
문화
스포츠
기획
특집
오피니언
문화
컬쳐라이프
문학출판
전시공연

■청년들에게 위로 건네는 '청춘발산마을'
마을의 일상, 풍경이 되다
2015년 도시재생사업으로 청춘발산마을 탈바꿈
70년대 호황서 달동네 전락 애환 딛고 새 명소로
젊은 청년예술가·예술공방 입주로 다시금 활기

2020. 02.20. 10:10:49

‘엄마를 기다리는 길’조형물.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 벽화.
이틀 내 끊임없이 쏟아진 눈이 언제 그랬냐는 듯 멈추고 햇살이 쏟아졌다. 추위에 몸을 꽁꽁 싸맸던 시민들도 한결 가벼운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한다. 맑은 날씨에 들뜬 마음으로 서구 양동에 위치한 ‘청춘발산마을’을 찾았다.



청춘발산마을로 들어서자 색종이처럼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물든 집들이 눈길을 끈다. 2015년 도시재생사업을 거치며 만들어진 지금의 청춘발산마을은 다양한 색들만큼 오랜 시간 변화하고 성장하며 지금까지 남아 광주의 역사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청춘발산마을의 토대가 된 ‘발산마을’은 1950년대 광주 천변에 사람들이 움막을 짓고 살면서 형성됐다. 생계가 어려웠던 이들은 광주천의 자갈을 캐고, 무등산의 나무를 베며 하루하루 살아갔다. 그러던 발산마을이 활력을 찾은 것은 1960년대였다. 마을 인근에 방직공장인 ‘전남방직’이 생기면서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으러 온 여공들이 몰려든 것이다. 자연스럽게 발산마을은 여공들의 터전이 되었다. 주민들은 여공들을 상대로 하숙을 하며 살림을 넓혔고, 주위에 식당이나 세탁소, 유흥가와 옷가게 등 다양한 가게들도 차례로 문을 열게 되면서 마을은 활기를 맞았다. 출근 시간이면 골목 여기저기서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퇴근 시간이면 밥 짓는 연기가 길거리에 자욱했다.

하지만 발산마을의 활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호황을 누리던 방직공장은 주 생산원인 무명천 광목이 점점 퇴조하면서 급격한 불황을 맞았고, 이에 여공들은 하나둘씩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마을은 계속 어려워졌고, 결국 발산마을은 ‘달동네’가 되었다.

갖가지 색으로 꾸며진 집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발산마을의 오랜 세월을 짐작할 수 있는 흔적들이 가득하다. 가파른 계단에 틈 없이 붙어있는 작은 집들과 갈라진 벽, 빛이 바래 녹이 슨 철창 대문 등이 그것이다.

영원히 달동네로 남겨질 처지였던 발산마을은 2015년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면서 ‘청춘발산마을’로 탈바꿈했다. ‘컬러 아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채색 사업은 미적인 기능 뿐만 아니라 마을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이야기를 담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들은 또한 ‘마을 텍스트’사업을 동시에 진행, 마을 곳곳에 ‘여전히 부족하지만, 나는 나의 열정을 쓰다듬어 준다.’,‘열심히 따라가다 보면/어느새 하늘과 멀리/저쪽 언덕을 볼 수 있을 만큼/어느새 크게 자라있겠죠’ 등의 글귀를 새겨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 이 글들은 마을 주민들과 지역사회 청년, 공모 등을 통해 ‘청춘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라는 주제로 선정되어 그 의미가 깊다.

청춘발산마을의 명소 108계단.
벽화나 조형물 또한 발산마을과 관련된 것들로 마을 곳곳을 장식한다. 어머니가 빨리 퇴근하기를 바라며 밖에 나와 마을 입구를 한참 바라보는 아이들 조형물과, 좁은 골목에서 함께 놀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벽화도 눈에 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발산마을 전경.
별을 가리키고 있는 캐릭터 조형물.
마을의 명소인 108계단을 오르면 별마루 공원이 나온다. 별마루 공원에는 도마 형태를 본뜬 ‘ㄷ자’형태의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양1’이라는 기술로 유명한 기계체조 국가대표 양학선 선수가 유년 시절을 이곳 발산마을에서 보냈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대표하는 체조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그의 삶을 바탕으로 어린 청춘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주민들과 청년예술가, 자생단체가 함께 구상한 결과물이다. 전망대에 서면 발산마을 전경과 광주천 너머가 훤히 내다보인다.

청년발산마을은 예술공방, 카페 등을 운영하는 청년들이 입주하며 다시금 활기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한 외출자제와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얼어 걷기 힘든 길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젊은 청년들이 마을 곳곳을 누비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래된 집들 사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꼬마 아이들에게 놀라기도 했다. 책가방을 메고 신나게 골목 사이로 사라지는 아이들을 보며 다시금 1970년대 발산마을을 생각해본다. 3교대로 출근했던 여공들 몇몇이 눈 쌓인 다리를 지나 골목을 걸어 이 작은 집들로 들어가 언 몸을 녹였으리라. 고되지만 가벼운 발걸음 소리와 나누는 대화 속 웃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오지현 수습기자

정치

사람들

경제

사회

기사 목록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