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너무 빨리 온 광주의 미래
정진탄 뉴미디어본부장 겸 논설위원

민선 7기 당시 이용섭 광주시장이 미래 지역민 식량을 위해 인공지능(AI)을 들고 나올 때 ‘신의 한수’란 말이 돌았다. 이 전 시장이 원했든, 다른 사람이 그렇게 불렀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AI 만한 것이 없다는 거시적, 과학적 안목이었다. 그래서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서고 전문기업과 연구소 유치, AI 인력 양성 등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윤석열 정부는 AI 강국을 표방하며 광주의 AI산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현재 광주시정은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쏠리는 듯해 AI산업이 다소 가려지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가 있다.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와 AI를 분리할 수 없으나 왠지 민선 7기와 8기의 시정의 ‘핀트’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지적이다.

근·현대화 시장경제 지연

여하간 이 전 시장이 AI에 사활을 건 것은 광주를 ‘정치 1번지’에서 ‘경제 1번지’로 전환시키려는 특단의 선택이었다. 정치적으로 정의로우면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광주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와중에 광주에 무슨 AI인가 하는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을 지닌 이가 적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 인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뚱딴지같지만 광주의 근대화, 현대화는 정치적 소외와 냉대 속에서 더디게 진행돼 시민들의 자본주의 시장 인식, AI 같은 하이테크산업에 대한 사유 확장성이 위축된 것은 아닌지 우려할 때가 있다. 이를 테면 광주는 아직도 ‘전통시장형 시장성’이 강하고 ‘복합쇼핑몰형 시장성’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는, 맹아적 형태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도시가 이익사회 발전형이라기보다 촌락공동체적 안정형이라고 할까. 이런 인식의 지평에서는 미래 성장 동력이 움트기는 좀체 어렵다 할 것이다. 무릇 성장하는 데는 전 단계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숙이 필요하지만 광주에서는 발전 단계가 충분하지 못해 AI 기술을 선보이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런 분위기로 말미암아 광주에 AI 생태계가 잘 될 수 있을까, 또 광주에 무슨 미국식 복합쇼핑몰인가 유럽 선진국 같은 골목상권 경제를 키우지 말이야 하는 야유와 탄식조가 들릴 때가 있다. 사실 AI 생태계 조성이 당장 시민의식과 거리가 있듯 유럽식 골목경제 권장도 역사적 거리를 너무 뛰어넘었다. 산업혁명과 근·현대화 과정을 철저하게 겪은 유럽 선진도시의 골목경제를 근·현대화의 시장성을 온전히 거치지 않은 광주 도시권에 그대로 수놓듯 접목한다는 것은 이 또한 시대적 부조화이다. 이 지역은 시장성을 통한 규모의 경제, 파이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그렇잖아도 한국인, 특히 광주인들은 역사적으로 중앙집권적, 집단의식이 매우 강한데 근·현대화의 압축성장 속 소외를 통해 자본주의 시장성에 대한 학습할 기회를 많이 잃어버렸다. 지금 광주에 필요한 것은 중앙이나 국가가 알아서 해주는, 정부가 책임져서 떠맡는 방식이 아닌 기업과 시민 개개인의 주체적인 참여 속에서 공정한 시장 질서를 유지,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영남에 비해 뒤쳐져 있는 인프라는 일정 부분 국가 주도가 적절하기는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은 호남대로 자강불식, 자가발전을 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

AI에 광주 미래를 걸었으면 올인하다시피 관련 산업을 증폭시키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이에 걸맞은 AI영재고 같은 교육기관, 교통, 관광 인프라 확충을 꿋꿋이 해가야 한다. 특급호텔 건설, 복합쇼핑몰 유치, 롯데월드 같은 엔터테인먼트, 또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도심 수소트램 연결도 도시 발전, 시장경제 확장성이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요구된다. 군 공항 이전 같은 문제 역시 국가 주도, 특별법 제정이 중요하지만 잠재적으로 중앙 예속적 시각에서 머무르고 있는 건 아닌지 살피고 광주와 전남지역 당국자가 상시적으로 만나야 한다. 데면데면하면서 중앙의 지원만 바랄 게 아니라 최소한 스스로 해결하는 노력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보여야 한다.

깨어있는 시민 역량 발휘

반복하지만 이 모두는 풍요로운, 지역 미래를 위한 것이며 주체성과 시장경제 활성화를 위해 긴요하다. 만일 이것이 매우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할 정도라면 일찌감치 광주를 정치 1번지에서 대한민국 정치의 총본산으로 기능하도록 방향을 잡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아예 정치 본거지로 세계적 브랜드화를 추구하는, 이를 테면 세계 정치거물들을 연중 잇달아 초청하거나 국제포럼을 여는 등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정치 총본산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종국적으로 경제성을 창출하는 방식이다.

광주의 미래는 AI처럼 이미 우리 주변에 퍼져 있는데 근·현대화 경제발전 단계에서 소외,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학습시간 부족, 이에 따른 인식론적 지체 등으로 내실화, 내재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 거리와 간극을 좁히는 노력은 상당기간 지속해야 할 것이며 고통과 혼란이 불가피하다. 지자체·행정당국만의 노력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에 깨어있는 시민 개개인의 협력과 역량 발휘가 절실하다. 그러나 이 또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인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