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옛날 친구들과 함께 한다. 옛 친구들과 만나면 온갖 이야기들이 시끌벅적 쏟아진다. 60년 전 악동의 전설까지도 나온다. 고향으로 학교로 친구로 이어지며 다른 인연의 끈을 끌어내기도 한다. 어떻게 그런 걸 다 기억하고 있을까 싶은 것도 있다. 그러면서 이런 요란스럽고 유쾌한 대화는 유명하지 않기에 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유명해지길 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은 유명인이 아니거나 익명성의 자유로움 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처럼 떠들어도 우리가 누군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얼마나 편안하고 자유로운가. 유명하지 않다는 것은 결코 부끄럽거나 안타까운 게 아니라 오히려 자유로움의 감사다. 하지만 유명하지 않은 나도 가끔은 당황할 일을 겪는다.

카톡으로 내 모습이 보내져 왔다. 편하게 슬리퍼 신고 반바지 차림으로 동네 마트에 다녀왔는데 누가 지나가다 보았고 그걸 인사 겸 보내온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기습적으로 들켜버린 민낯의 모습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그랬을 터이지만 내 입장에선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으니 유쾌한 보여짐은 아닌 것이다. 모른 척 못 본 채 지나가 주었으면 어땠을까.

나도 집에 오는 손녀들 사진을 찍어 내 계정에 올리기도 하는데 정작 아이들이나 그 엄마들도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 저희들은 온갖 요상스런 모습까지도 올리면서 정작 할아버지 할머니가 예쁘다고 저희 모습 몇 장 올리는 것은 싫은가 보다. 사실 세상이 하도 흉흉하니 나와 관련해서 아이들의 소재나 인적 사항이 노출되거나 공개될 우려도 있는 터라 다분히 걱정이 될 수도 있겠다.

나도 명색이 비교적 큰 교회의 장로라 어디서건 교인들에게도 보일 수 있고 40년 문단 생활에 문학단체의 장을 지낸 것도 여럿이니 나를 아는 사람도 더러는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나를 들켰을(?) 수도 있다. 또 늘 행사장에서 보던 정장한 모습이 아닌 아무렇게나 해체된 자유분방한 모습은 신기하고 신선해 보였을 수도 있다. 나 같은 사람도 이런 경우를 당하는데 유명한 사람들은 한순간도 얼마나 조심스럽고 신경 쓰이며 불편할까. 해서 항상 옷매무새를 신경 써야 한다는 것 같다.

지금도 죽마고우들과 차를 마시다 보니 모르고 있었거나 까맣게 잊고 있던 것들까지도 들춰내니 치부는 아니더라도 밝혀지긴 싫은 얘기들까지 까발려지곤 한다. 그러니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고 주위 사람들도 의식이 되고 신경이 쓰인다. 만일 내가 유명인이라도 되었다면 이 또한 얼마나 당혹스런 일일까. 누가 볼까 봐 들을까 봐 마냥 눈치가 보일 것이다. 그러니 유명하지 않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 서운한 것이 아니라 진정 감사할 일이고 자유롭고 행복한 일이다.

뉴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보일 때가 많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라면 결코 입에 오를 내릴 일도 아닌 것이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곤욕을 치르는 걸 심심찮게 보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에게 보인다는 것은 늘 조심스럽고 불편한 일일 수 있다. 하니 유명하지 않다는 것은 군중 속에 묻혀 있는 자유로운 나일 수 있다. 내 이름을 모르는 익명의 나만일 수 있고 그래서 나만의 나일 수 있다. 유명하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한 일이다. 친구들과 부담없이 떠드는 이 시간 나는 오랜만에 유명하지 않은 행복을 맘껏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