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발과 낚시 그물로 포위된 일상, 구불구불 미로를 거쳐야 도달할 수 있는 집…. 예측 불가능한 사회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과 고독감, 우리 사회의 모순과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현실을 각자의 방식으로 구현하고 그 이면에 내재된 개인적 심상과 불안, 그리고 사회적 부조리를 보여주는 청년작가 4인의 작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가 눈길을 끈다.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에서 진행중인 제24회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 빛2024 ‘사이: 현실과 이성’이다.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은 하정웅 명예관장의 메시지와 정신을 기리고 청년작가 발굴과 육성을 위해 지난 2001년 시작됐다. 그동안 지역을 기반으로 독창적이고 자신만의 작업 활동을 펼치는 청년작가 123명이 선정됐으며 이번 전시는 24번째다.

이번 초대전에서는 강민기(부산), 박호은(경기도), 장재민(대전), 윤준영(광주) 작가의 회화·영상·설치 등 40여점을 만날 수 있다. 경기·강원, 경상·대구·부산, 충청·대전, 광주·전남 등 4개 권역으로 나눴고 각 권역의 대표 공립 기관인 부산시립미술관, 경기도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12명의 작가를 추천받아 최종 4명이 선정됐다.

1층 갤러리에서는 강민기 작가와 박호은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강민기 작가는 자본주의의 폐해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우리 사회 구조와 시스템이 스스로 유지되고 작동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다루는 작업을 한다. 작가는 인간 사회의 관계와 사회체제의 구조를 그물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으며 어업용 통발과 낚시 그물을 이용해 우리 사회의 모순과 인간의 욕망 그리고 사회시스템의 모순을 시각화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설치작품 ‘모색’, ‘Illusion Space’, ‘변질된 상징’ 그리고 영상 작업인 ‘Capturing #1’, ‘Captured# 2’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박호은 작가는 사회의 부조리와 개인적 내면의 불안, 인간관계의 소통 속에서 야기되는 문제들을 주제로 작업을 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어둠 너머의 풍경-여명의 숲’ 작품의 시작점은 개인적인 내면의 심상이다. 작가는 개인적인 불안과 우울이 자신을 침잠해 올 때의 고통과 두려움, 그 고통·불안의 과정과 불안을 극복해가는 여정을 통해 인식하는 삶과 죽음의 본질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강민기 작 ‘Illusion Space’

2층 갤러리에서는 윤준영 작가와 장재민 작가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윤준영 작가의 작품은 먹과 콩테를 이용해 무채색과 검은색으로 단순한 형태의 구조물을 배치한 점이 특징이다. ‘Home’(2016), ‘소란한 침묵’(2018) 등 초기 작품은 불안한 현실의 모습을 칠흑 같은 어둠 속 홀로 떠 있는 등대 그리고 달빛 아래 숲속 풍경, 사방이 닫힌 미로 등으로 표현했다. 2022년부터는 내면의 감정을 뒤돌아보고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사유의 여정을 주제로 하고 있다. 작가가 그린 작은 집은 하나의 위안의 공간을 의미하며 작품에 등장한 돌은 자신의 삶에 대한 개인적 믿음과 희망을 상징한다.

장재민 작가는 풍경화 작가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풍경화와는 사뭇 다르다. 작가가 그린 풍경화는 실제 풍경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대상의 형태가 일그러지고 원근법적인 해석도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가 선택한 장소는 숲, 저수지, 재개발된 공사 현장 등으로 황폐화된 자연이나 인적이 드물어 삭막한 장소다. 작가는 이러한 장소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역사적 의미, 그리고 환경적 특징을 개인적 감정과 결합, 강한 생략 기법과 잿빛의 물감을 이용해 새로운 공간으로 해석하고 작품화했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대표적인 초기작인 ‘비린 곳’(2015)과 가장 최근작인 ‘섬 그림’ 시리즈(2024)를 선보이고 있다.

2층에서는 4명 작가들이 직접 말하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포트폴리오와 함께 영상으로 보고 들을 수 있다. 전시는 오는 2월 16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