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역 행정관청에 설치된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이 상당수 지자체들의 무관심 속에 당초 취지와 달리 정상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임산부 주차구역은 임산부의 이동 편의를 위해 지자체 조례로 설치된 시설이다. 하지만 임산부 주차구역에 일반차량은 물론 관용차까지 버젓이 주차돼 있는 사례가 목격돼 임산부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4일 광주시 등에 따르면 각 지자체는 ‘광주시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 설치·운영에 관한 조례’를 통해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 설치와 운영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하고 있다.

조례를 보면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은 통행이 편리한 장소에 설치해야 하며 바닥 면에는 임산부 전용 표시를 하고 주차장 안의 알아보기 쉬운 장소에 표지를 부착해야 한다고 돼 있다.

또한 임산부 자동차 표지를 부착하지 않은 차량은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에 주차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한 차량에 대해서는 이동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지자체는 많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폭설이 내린 4일 오전 찾은 광주시청 제1민원인 주차장의 경우 임산부 전용 표시가 바닥에만 표시돼 있을 뿐 주차장 내 알아보기 쉬운 장소에 표지를 부착하지 않아 민원인으로선 임산부 주차구역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또 어렵게 찾은 임산부 주차구역에 일반차량이 주차돼 있었지만 강제 이동 등 별도의 조치는 취해지지 않고 있었다.

북구청을 제외한 광주지역 4개 자치구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남구청과 광산구청 지하 주차장에 마련된 임산부 주차구역은 바닥에 해당 표시가 그려져 있었지만 이미 주차돼 있던 일반차량들로 인해 그곳이 임산부 주차구역인지 자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바닥표시는 물론 주차장 입구 안내표지판까지 규정에 맞춰 임산부 주차구역을 설치해놓은 서구청도 일반차량 주차 만큼은 정상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임산부 주차구역 4면을 설치한 동구청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임산부 스티커가 미부착된 일반 차량은 물론 구청 관용차량까지 버젓이 세워져 있는 경우까지 목격돼 구청이 앞장서 임산부 주차구역 설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동구청은 수개월 전부터 이같은 민원이 이어지자 대안으로 지난해 ‘가족배려주차장’ 조성을 추진하기도 했다. 당시 동구청 행정지원과는 청사 내부에 설치된 임산부 주차구역 4면을 철거하고 별관 앞 일반 주차구역에 노약자와 임산부 등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3면 규모의 ‘가족배려주차장’을 조성하려 했다. 그러나 지난 1월 동구청 과 개편 이후 논의 상대가 여성아동과에서 인구청년정책과로 바뀌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인구청년정책과는 2015년 제정된 ‘동구 임산부 주차장 조례’를 근거로 새로운 임산부 주차구역 신설에 반대했다. 결국 행정지원과의 ‘가족배려주차장’ 조성 계획은 무산됐고, 기존 임산부 주차구역 홀대 문제는 또다시 원점으로 되돌려졌다.

북구청은 일반차량이 주차할 수 있는 주차타워와 장애인과 임산부 등 배려가 필요한 운전자들의 주차구역을 별도로 설치해 임산부 외에는 주차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임산부 주차장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배경에는 상위법인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자리하고 있다. 이 법률은 장애인 주차구역과 달리 임산부 주차구역에 대한 강제 규정이 없고 지자체 조례 또한 이동 조치의 의무만 명시돼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부족한 시민 의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동구청을 찾았던 임산부 장모씨(29)는 “광주지역 임산부 주차장은 이름만 번지르르하고 실상은 무용지물이다. 법적으로 강제하고 제대로 관리 감독해야 한다”며 “불편한 몸을 이끌고 겨우 운전해서 왔는데 임산부 그림만 그려져 있을 뿐 일반차량들이 주차돼 있는 모습을 보고 진짜 너무 화가 났다. 임산부로서 서러움까지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동구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임산부 주차 스티커가 없는 차량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 사실상 단속에 어려움이 많다”며 “일반차량의 경우 과태료 부과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주차하면 안된다’는 계고 정도 외에는 강제적인 이동 조치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러한 법적 맹점을 악용하는 일부 시민들의 문제의식도 개선돼야 한다”며 “청원 경찰 등 관리 인력을 통해 스티커가 미부착된 차량에 대한 즉각적인 이동 조치를 강화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광산구청 관계자도 “상위법에 강제규정이 없어 사실상 일반 차량의 주차를 막기는 쉽지 않다”며 “임산부들이 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게 임산부 주차구역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이수민 기자

4일 오전 광주시청 제1민원인 주차장 내 임산부 전용 주차 공간에 임산부 차량 스티커를 부착하지 않은 차량이 주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