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오은영’이 필요한 도시
정진탄 뉴미디어본부장 겸 논설위원


요즘 TV채널을 돌리다 보면 눈에 잘 들어오는 프로그램 하나가 ‘금쪽같은 내새끼’, 그리고 ‘금쪽 상담소’가 아닌가 한다. 오은영 정신과 의사가 출연해 가족 간, 부부 간 문제 해결을 도와주는 내용으로 본방송뿐 아니라 케이블TV 재방송이 많다. 그녀의 상담 문제 솔루션이 좋은 점이 있겠지만, 가족 문제가 서로 비슷한 점이 있어 입장을 치환해 생각해볼 여지가 한몫한다고 하겠다.

통상 한 세대인 30, 40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그러니까 1980년 또는 1990년대 어디쯤이라면 부모와 자녀, 부부 문제가 분명 똑같이 있었을테지만 지금처럼 ‘유난’을 떨지 않고 넘기거나 성격이 좀 달랐지 않았을까 한다. 그때가 어느 때인가.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이 끝나기 전후로 대규모 군중시위가 많았던 시기다. 개인 문제보다는 더 큰 카테고리의 국가와 민족이란 거대담론을 운위하는 때여서 가정사가 묻히거나, 있어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사회 분위기였다.

국가 앞에서 작아진 개인문제

당시 개인, 가정적인 문제는 드러내놓기도 그렇고, 공개하면 좀스럽게 보이기도 해서 안 보이게 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실제 국가 또는 역사 발전의 존망이 걸려 있는 때에 개인의 정신적인 고민은 계급투쟁, 민주화투쟁의 담론 뒤로 밀리거나 그 속에서 용해되거나 했다. 큰 뜻에 젖어 개인적인 연대감이 잘 형성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어서 미시적인 정신·심리 장애는 그 안에서 풀렸을 수 있다는 얘기다.

거칠게 예를 들어보면 폭력배 사이에서 현대인이 자주 겪는 결벽증, 대인기피 같은 증세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증세가 있으면 아마 폭력세계에서 실격될 게 뻔하다. 주먹으로 승부를 보는 ‘어깨들’이 이런 장애를 보이면 곧바로 상대편 공격으로부터 나가떨어지지 않겠는가. 그런 것처럼 급박한 민주화 투쟁 앞에서 개인 정신·심리적 문제는 쫄아들거나 소멸됐을 개연성이 크다. 최소한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로 인해 어쩌면 개인, 가정적인 문제가 더 큰 화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을 수 있다.(5·18 희생과 같은 집단적 트라우마는 여기서 논외로 한다.)

그런데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디지털이 지배하고 4차 산업혁명의 인공지능(AI)이 인간보다 위에 서는 시기를 맞아 인간은 많은 정신적 문제를 양산했고, 여기서 우리는 더 큰 불안과 우울을 겪고 있다. 그리고 이를 숨기는 사회 분위기는 좀 가시고 ‘금쪽같은 내새끼’, ‘금쪽 상담소’란 프로그램이 나와 마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바다.

이런 문제는 정부 또는 행정기관이 말하는 사회취약계층 대처 차원과는 다르다. 절대 빈곤에서 시달리는 것 아닌, 보통의, 또는 잘 살고 번듯한 집안 내의 문제로 솔루션이 다르게 처방돼야 할 것이다. 압축성장한 우리 사회의 고유의 문제일 수도 있고, 선진국으로 가는 단계에서 통과의례처럼 겪는 개인, 가정사의 다양한 문제일 수 있다.

특수한 가정환경에서 더욱 심각한 상황을 겪은 이들도 상당할 것이다. 광주 도심 속 거리를 걷다보면 혼자 중얼거리는 행인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대부분 이어폰을 끼고 통화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귀에 이어폰이 없는데도 혼자 큰 소리로 반복되는 내용을 중얼거리고 있는 이가 있어 깜짝 놀라게 한다. 행색이 비루해 보이지 않는데 이런 부류의 정신 장애인이 종종 목격된다. 또 같은 장소를 오가며 자꾸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른 아침 길바닥에 무엇을 열심히 쓰며 외우는 사람 등이 눈에 띈다.

정신장애 제도적 대응 강화

홈리스 같은 사회취약계층은 물론이고 우울, 불안, 분노 등의 정신·심리적 장애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가정 내에서, 직장 내에서 말 못할 고민이 발생하고 있고, 이를 다스려줄 제도적 장치는 충분치 못한 때다. 이런 가운데 얼마 전 현대자동차그룹이 오은영 정신과 의사를 초청해 상담콘서트를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직원들의 이런저런 정신적인 문제를 상담해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와 다른 차원의 기업문화가 아닐 수 없다. 경쟁에서 소외될 수 있고, 현대사회의 긴장감 속에서 가정사 문제, 직장 문제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이런 것을 회사 경영진이 나서 해결하려는 새로운 시도는 평가받을 만하며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사회가 분열을 지속하고 첨단기술이 노동을 대체하며 삶을 송두리째 바꿔가는 과정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존재론적 고민이 부상할 것이며, 인간관계에서 부딪히는 성격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띨 것이다. 이런 사회적 구조와 환경은 치유라는, 영혼이라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주목하게 하며 전문 분야의 해결책이 함께 요구될 것이다. 이 같은 해결책을 제공하는 곳이 전문병원, 또는 종교시설 등이 될 수 있겠지만 제도적 차원의 모색이 우선시돼야 한다. 행정 당국과 의회 지도자들이 인식의 폭을 넓혀가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