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지역정당 꿈꿔야 하는 도시
정진탄 뉴미디어본부장 겸 논설위원


중국이 G2 멤버인 미국을 제치고 단독으로 세계 최대강자가 될 것인가에 대해 필자는 한 표를 주지 못한다. 관련 논의에 다양한 자료와 이론적 뒷받침이 요구되므로 전문가들은 역사적, 정치경제적 근거와 연원, 미래 과학기술 발전 예측 등을 토대로 미국 또는 중국 우위 경쟁을 점치고 있지만, 필자는 딱 하나 콕 집어 말하자면 중앙집권적 사회주의 중국이 과연 연방제, 50개주 블록 통치를 하는 미국 자유주의를 밀어낼 것인가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중앙집권 체제는 주지하는 것처럼 압축성장 또는 단기간 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으나 자율성과 창의성이 대단히 제약을 받는다는 점에서 못지않은 약점이 있다. 인공지능(AI)이 중심이 되는 4차 산업혁명의 세계에서는 중앙집권 체제가 시대착오적 유물로, 효용성을 잃을 것이란 나름의 전망을 하고 있다. 설령 그런 체제가 지속 가능하더라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기술력과 정치력을 확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매우 비관적이다. 왜냐하면 세계 기술패권을 거머쥐기 위한 창조적 토양이 중앙집권 체제에서는 기대 난망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러니까 미국이 인간의 창조, 창의성을 중시하는 국가시스템을 유지하는 한 미래 세계는 중국보다는 미국에게 훨씬 혜택을 주며 조응해갈 것이란 판단이다.

창의성 잃는 중앙집권 체제

이런 생각을 국내 정치에도 거칠게 적용해, 국내 정치의 중앙집권적 체제를 헐어버리고 연방제 수준의 지역균형발전이 이뤄지면 어떨까 한다. 사실 이것은 최근 수년 동안 광역지자체 수준에서 꾸준히 제기돼 온 중차대한 사안이다. 행정통합, 메가시티, 특별지자체 설립 등이 이런 맥락으로 태동하고, 또 여세를 몰아가고 있으며 중앙권한과 재정권을 획기적으로 지방정부에 이양하는 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물론 그 결과는 아직 초라하긴 하지만.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정부 강화는 중앙정부가 시혜를 베푸는 듯한 저간의 국가시스템을 전면 전환하자는 취지다. 지방소멸, 인구소멸 대응 차원에서 너무나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적인 차원에서 지방거점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발상은 이런 분위기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굳이 서울로 가지 않더라도 지방 대도시에서 교육, 주거, 취업이 안락하게 이뤄지게 하는 시스템이라면 지방·인구소멸론은 주춤할 것이다.

그런데 어쩌랴 우리나라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워낙 역사·정치적으로 중앙집권적 체제를 유지해온 터라 국민 뇌리에 인이 박혀 있어 이를 강력히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정치 권력적인 필요성과 경제적 번영 프로그램에 따라 중앙집권적 체제가 효과적인 때가 있었기도 했지만 이제는 뭔가 다른 통치, 지배구조를 모색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라고 본다.

모두가 서울과 수도권으로 향하는 시스템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수도권 기득권을 깨야 하고, 이를 발휘할 힘이 정치권에서 나와야 한다. 하지만 정작 중심권인 정치권조차도 수도권이 아니면 나머지는 시골로 여기는 풍조가 강해 이를 해결하기가 정말 어렵다. 굳건한 중앙집권적 정당체제가 그렇고, 이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지역정치판 구조가 그렇다. 우리는 매번 선거 때마다 이를 목격하고 있지만 어쩌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의 텃밭, 심장이라고 불리는 광주에서 중앙당 지도부 선출 당시 연이어 고배를 마셔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한숨이 지역사회에서 깊다. 뿐만 아니라 선거가 다가오면 지역민에게 각종 공약을 내걸어 민심을 흔들었다가는 선거가 끝나면 중앙 정치권에서 정쟁에 몰두한 나머지 지역 현안에 별 관심이 없는 것에 배신감을 느낀다.

문재인 정부 때 광주 군공항 이전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치권이 제할 일을 했더라면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진척을 보이지 않았겠느냐, 전남에 국립 의과대를 유치 못한 데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정치권에서 역량을 제대로 결집했더라면 민주당 정부 때 가능하지 않았겠느냐는 불만과 푸념이 유권자 입에서 흘러나온지 오래다.

총선 앞두고 새 정치지형 기대

모두가 중앙으로 눈을 돌리는 상황에서 어떤 이가 큰 물줄기를 바꿀 것인가. 지역민들 중에는 지방에 일어나는 일보다는 중앙에 관심을 주는 이가 적지 않으나 요즘에는 중앙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 구조를 혁파하고 차라리 대놓고 지역별, 권역별 정당을 만들어 새로운 정치사를 창조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이가 늘고 있다. 중앙만 바라보다가는 지방은 영원히 내국적인 식민지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자구책 차원이다.

이런 정치변혁 기운은 야당 텃밭인 광주 등 호남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지지 블록인 영남권에서도 감지된다고 한다. 워낙 중앙 예속적인 삶을 살다보니 이제라도 새로운 문명을 이끌고자 하는 인물과 정치구조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 향방을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2024년 총선을 앞둔 내년 하반기 전후, 보다 구체성을 띠지 않을까 하는 시각도 있다. 설령 지역당이란 새판짜기가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다는 심정이다. 뜻 있는 이들이여 분발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