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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배움은 진주 찾기 아닌 새 생명 키우는 것

2022. 12.12. 17:11:55

<화요세평>배움은 진주 찾기 아닌 새 생명 키우는 것
박병기 광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대덕치과 원장


타인이 저술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정신적 배설물 속에서 진주를 찾는 것이 아니라 배설물로 양질의 거름을 만들어 흙에 묻고 그 위에 씨를 뿌려 새로운 생명이 자라게 하는 것이다.(둥근돌의 생각)

2016년부터 10월부터 고전 글쓰기를 하고 있다. 논어 첫 문장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를 시작으로 대학을 마치고 중용을 중간정도 쓰다 중단하고 장자 글쓰기를 한다. 고전 글쓰기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하루에 한 문장을 목표로 진료 시간에 한자를 쓰며 문장에 대해 느낌이 올 때 까지 인터넷을 뒤지고 구매한 책들을 반복하여 본다. 학(學)자는 臼(절구 :구) 爻(효:효. 세상의 모든 일) 冖(덮을: 멱) 子(아들 :자)로 구성되어 있다. 學을 스승에게 일방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들이 토론을 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해석해 본다.

논어(論語)

子曰 文莫吾猶人也 躬行君子 則吾未之有得.(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문은 내가 다른 사람과 같지 않으랴? 그러나 군자의 도를 몸소 실천함은 가능함이 있지 못하다”)에서 躬자가 나온다. 躬(몸:궁)은 身(몸:신)+弓(활:궁)이 조합된 한자이다. 내 몸이 화살이라면 “내 몸의 활이 되어 본적인 있는가? 자문해 본다. 어린 시절 내 몸의 주인은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내 의지와 다른 행동들을 하였다. 그리고 성장하며 타인들의 시선이 내 몸의 주인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대학과 학과가 아닌 부모님과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였다. 아니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 본적도 없었다. 고민해 본적이 없기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치과대학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내 몸의 주인은 배우자, 자녀, 재물 등등 접하는 모든 것이 몸의 주인이 되었다. 내가 아닌 타인이 내 몸의 주인라고 느낄 때 가슴 곳에는 No라고 외치고 싶었다. 가끔 사람들이 없는 외진 곳에서 그냥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꼈다. 그것도 한순간. 궁(躬)에 빠져 한 달을 보내며 이제 ‘No’라는 말을 할 수 있다. No라 말할 수 있기에 타인의 ‘No’라는 말에 상처받지 않는다.

대학(大學)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하루를 새롭게 바꾸면, 매일 새롭게 바꾸고, 새로운 것도 또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 新(새로울:신)자가 핵심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新(신)자는 木(나무:목) + 立(설: 립)+ 斤(도끼: 근)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있는 (살아 있는)나무를 도끼로 찍어 나무가 죽었을 때 가구나 집 등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나무는 생명을 잃는 고통이 동반되었을 때 새로워지는 것이다. 고통을 이기는 것은 약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을 즐길 수 있는 꿈이 있기에 가능하다. 나에게 새로워지기 위해 고통을 즐길 수 있는 꿈이 있는가? 나는 치과대학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치과의사가 되었다. 다른 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30년을 치과의사라는 갑옷을 입고 살고 있다. 고전 글쓰기를 하며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아졌다. 꿈이 있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매일 매일 새로워져야 한다. 일상에서 벗어나야 새로워진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만나는 사람을 바꿔라’ 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중용(中庸)

서양의 저울은 대상의 무게를 측정하기 위해 다양한 무게의 측정도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저울추의 다양성이 상실되었을 때 측정이 불가능하다. 동양의 저울은 나와 상대를 바꾸지 않고도 측정 범위 내에서 중심을 이동하여 측정할 수 있다. 10개의 빵을 10명에게 나누어준다는 가정 아래 필자는 서양의 중용은 한명에게 1개의 빵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동양의 중용은 배고픈 사람에게 더 많은 빵을 나누어주는 행위를 말한다. 중용이란 나의 관점뿐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보며 적절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중용은 타인의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중용은 배려이다. 중용은 지식(知 알:지) 가 아니라 지혜(智 지혜:지)가 필요한 행위이다.

장자(莊子)

장자는 ‘북명(북극바다) 심해에 수천리 크기의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수천리 크기의 붕(鵬)이라는 새가 되어 해운(海運. 태풍)을 만나(스스로는 날 수 없기에) 구만리 상공까지 올라 육 개월을 바람에 몸을 실어 남극에 도달한다’는 황당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곤은 북극 바다에 산다는 어마어마하게 큰 상상 속의 물고기이다. 거대한 붕은 스스로 날 수 없기에 해운을 만나야 비상(飛上)하여 북극을 떠나 남명까지 갈 수 있다. 구만리는 35,000 km 높이이다. 인공위성은 적도 상공 약 3만6,000km의 높이에서 비행한다. 붕이 해운을 만나 비상을 하였더라도 구만리 높이까지 오르지 못하면 바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날아야 한다. 힘이 있을 때 남명을 향해 앞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구만리 상공까지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6개월을 날개 짓하며 날아야 한다. 구만리 두께의 바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남명에 이르기 전에 힘을 소진한 붕은 바다에 떨어질 것이다. 우리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하야한 대통령을 보았다. 임기가 1년이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민심을 얻지 못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날고 있는 대통령을 보고 있다. 선거 때 지지하지 않은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5년이라는 기간은 20% 후반, 30% 전반의 지지율로 날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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