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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광주 치의학 100주년을 기념하며

2023. 01.09. 16:32:29

<화요세평> 광주 치의학 100주년을 기념하며
권훈 미래아동치과의원·광주시 남구치과의사회장


우리는 일상에서 ‘100주년 기념’이라는 행사를 종종 접한다. 이러한 행사를 위해서는 역사적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 즉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기록물이 존재해야 한다.

1923년 6월 미국인 치과의사 리비(James K. Levie, 1890~1977, 한국명 여계남)는 광주 제중원(현 기독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하였다. 필자는 이 진료를 광주에서 행해진 치의학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한다. 정규 치과대학 교육을 받은 치과의사가 공식적인 의료기관에서 행한 진료이기에 ‘광주 치의학 100주년’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만큼 충분한 자격과 권위가 있다.

미 치과의사 제중원서 첫 진료

2015년 광주 기독병원 개원 11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된 ‘제중원 편지 2’에서 광주에서 17년간 의료 선교사로 활동한 치과의사 리비의 생생한 경험이 기록으로 잘 남아있다. 아울러 그 시기 광주 사람들의 구강 위생 상황도 짐작할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리비의 편지를 읽으면서 그에 대한 추앙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

1922년 2월 32세의 미국인 치과의사 리비는 미국 남장로교 한국 선교사를 지원하였고, 1922년 11월 군산 선교병원에서 치과진료를 시작하였다. 그는 한국에 입국할 당시 두 아이의 아빠였고, 미국에서 약사와 치과의사 면허를 소유한 전문직업인으로 장밋빛 인생이 보장된 청년이었다. 아무리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100년 전 치과의사 리비의 결심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리비는 1923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로부터 치과의사 면허번호 29번을 부여받았고, 6월부터 광주 제중병원에서 치과의사와 약사로 겸직하면서 의료 선교활동을 하였다.

광주에서 리비가 치과의사로서 의료 선교활동을 한 시점이 얼마나 초창기였는지 가늠하고자 일제강점기 조선에서의 치과계 상황을 알아본다. 1914년 치과의사 규칙의 법령이 실시됨으로써, 일본에서 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함석태가 한국인 최초의 치과의사로 탄생하였다. 1921년 시행된 치과의사 시험을 통해서 조선에서 처음으로 치과의사들이 배출되기 시작하였으며, 1925년에는 정규 교육을 받은 경성치과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 치과의사로 사회에 진출하였다. 1923년을 기준으로 40여 명의 치과의사 중에서 미국인 5명, 한국인 9명 그리고 일본인 26명은 대부분 경성, 평양과 부산에서 진료를 하였다. 미국인 치과의사 리비가 유일하게 광주에 거주하면서 치과 치료를 담당하였다.

이번에는 일제강점기 광주에서의 치과계 현황을 살펴본다. 1910년 9월 통감부의 주도 하에 광주에 자혜의원이 설립되었고, 1912년 자혜의원에 치과가 신설되어 미즈시마 고이치로(水島小一郞)가 5년 동안 치과 진료를 담당하였고, 그 이후로 3명의 일본인이 후임으로 근무하였다. 안타깝게도 자혜의원 치과에 근무한 일본인은 무자격자이었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즈시마는 1921년 10월 치과의사 시험에 합격하여 치과의사 면허번호 13번을 취득하였다. 즉 광주 자혜의원에서 치과 진료를 담당한 일본인은 무자격자였기에 광주 치의학의 시작점으로 삼기엔 부적절하다. 광주에서 한국인으로 최초의 치과개원의는 1925년 경성치과의학교를 졸업한 조원(趙源)이다. 그는 1927년 1월 수기옥정(須奇玉町, 현재 수기동)에 춘당조원치과를 개원하였다. 아마도 조원 선생이 광주에서 치과를 개원한 최초의 한국인 치과의사로 생각된다.

업적 기리는 특별행사 마련을

1923년 치과의사 리비가 광주에 뿌린 작은 씨앗은 1963년 역시 치과의료 선교사 뉴스마( Dick H. Nieusma Jr, 1930-2018, 한국명 유수만)로 이어졌다. 치과의사 뉴스마도 23년 동안 광주 기독병원에 근무하는 동안 60명의 제자 치과의사를 배출하면서 한국 치의학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50년 후 리비의 씨앗은 드디어 큰 결실을 맺어 광주가 한국 치의학의 산실이 되게 한다. 1974년에 개교한 조선대학교 치과대학과 1980년 개교한 전남대학교 치과대학은 6,000여명의 치과의사를 배출하였고, 그들은 전국에서 대한민국 치과계의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치과의사 리비가 일제강점기인 1923년부터 17년 동안 치과의사로서 광주에 헌신한 업적을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필자부터라도 솔선수범하여 양림동 선교사 묘역 ‘고난의 길’의 리비의 이름이 적힌 디딤돌 계단에서 그의 헌신적 사랑에 존경을 표하고 감사의 마음으로 작은 꽃이라도 놓고 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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