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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박덕은 문학박사·화가·전 전남대 교수

2023. 05.24. 22:00:32

농부는 재 묻힌 씨감자를 밭에 심고 있었다. 칼을 댄 자리가 비명처럼 아득했을 텐데, 감자는 온몸에 돋은 눈으로 토막토막 잘리는 몸을 어떻게 쳐다보았을까. 쭈글쭈글 썩어 가는 몸에서 독해지며 끝끝내 돋은 눈. 감자의 눈은 한때 증오를 품은 시퍼런 칼날 같은 주먹이었을 것이다. 감자의 어디에 독을 품은 마음이 주먹을 움켜쥐고 숨어 있었던 것일까. 세상은 만만하지 않아 발악발악 대드는 그 주먹으로 자신을 지키며 여기까지 왔던 것일까.

독 품은 그 주먹처럼 그녀도 한때는 세상 향해 기를 쓰고 주먹을 들이댔던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쁘기로 소문난 그녀는 여고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딸 둘을 낳고 살았다. 하루는 옷가게 아저씨와 담소 나누었는데, 그게 부부싸움의 발단이 되고 말았다. 옷가게 아저씨와의 사이를 의심한 남편은 이후 그녀의 모든 걸 트집 잡기 시작했다. 트집은 평범한 시간의 목덜미를 물어뜯더니, 일상적인 감정의 발목까지 꺾어 버렸다. 정오가 그녀의 지난밤이 걱정되어 방안을 기웃거리면, 그때서야 그녀는 갈기갈기 찢겨진 시간을 주워들며 일어났다. 싸우는 소리가 귀에서 자라고 마르지 않는 욕설이 의자를 박살내도, 나이 어린 딸이 둘이나 있어 모르는 척 울음을 말렸다. 의처증이 심한 남편의 폭력은 흉한 점괘 같은 웃음을 흘리고 다닌다며 그녀의 시간을 아파트에 묶어 두고 숨통을 죄어갔다.

그녀의 꽃시절은 얼마 못 가 꺾여, 끝내 이혼했다. 두 딸과도 생이별을 해야 했던 그녀의 가슴엔 감자알만 한 푸른 멍이 들었다. 전 남편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그 푸른 멍 같은 주먹들이 쓴웃음 쏟아내며 몸부림쳤다. 분노는 자해와 같다며 미친 개한테 물린 셈 치고 잊어 버리라고 지인이 말했지만, 무수한 주먹들이 아픔의 머리채 휘어잡고 뒤엉켜 있어, 그녀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녀도 때로는 앙칼진 주먹이 칼 가는 소리 내며 자신의 인생까지 위협할 것 같아 주먹을 펴고 싶었지만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그녀는 두 딸을 데려오기 위해 술 빚는 어느 산방에서 기거하며 일했다. 술이 익어갈 때쯤에는 술독 앞에서 목탁까지 두드리며 염불했다. 술이 익기 전에는 어설픔과 독기가 살아 있는 날것의 苦가 들어 있다며 그 苦가 사라져야 깊은 맛이 난다고 했다. 술에 기대며 그녀는 자신의 苦를 내려놓기 위해 몸부림쳤다. 술에 대한 애정은 진심이어서 매니아층이 형성될 정도였다. 덕분에 두 딸을 데려와 대학까지 뒷바라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조장에서의 일이 길어질수록 그녀는 취기로만 뭉쳐 있는 짐승에게 잡혀 있는 날이 많아졌다. 그 짐승은 그녀의 기억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몸집을 키웠고 그녀는 초기 알콜성 치매 진단을 받아야 했다.

하지가 다가오고 있었다. 달빛 유전자를 점지받은 감자가 엉치뼈 깊숙이 묻어둔 별빛을 꺼냈는지 봄밤이 환했다. 어느 날 그녀는 양조장을 그만두고 절에 들어갔다. 새벽마다 목탁을 두드리며 그녀 가슴에 생긴 감자알만 한 푸른 멍을 꺼내기 시작했다. 독을 품은 그 푸른 주먹에서 울컥이는 것들이 흘러나오는 걸까. 그녀 마음은 조금씩 편안해져 갔다. 어둠의 주먹을 편 새벽 하늘이 감자의 둥근 시간처럼 환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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