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날씨도 좋고 꽃이 허벌나게 핀 4월 중순 미세먼지도 없다는 날이니 좀처럼 만나기 힘든 좋은 날이 분명하다.

봄날의 탄천 변은 그야말로 꽃 잔치다. 하얗고 빨간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눈을 유혹하고 마음을 뺏는다. 일찍 피어 벌써 지기 시작한 꽃잎들은 별인 양 땅으로 지며 은하수가 내려앉은 듯 별세계를 이룬다.

탄천 길로 접어드니 자전거를 타는 사람, 달리기를 하는 사람, 그냥 걷는 사람 등 많이도 나와 있다. 오늘은 첫날이니 욕심내지 말고 조금만 나가보기로 했다. 신갈에서 구성을 지나 죽전까지 가니 운동하지 않은 티가 종아리로부터 나타난다. 그래도 물 한 모금 마시고 심기일전하여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오리역을 거쳐 미금역까지 가서 서울대병원쯤에서 돌아오기로 했다. 무리하지 않도록 중간에 쉬면서 물도 마시고 가지고 간 과자도 먹었다. 그런데 갈 때는 그나마 잘 갔는데 돌아오는 길은 확실히 힘에 부친다. 바람을 안고 오는 것도 있지만 그 잠시의 자전거 타기도 내겐 벅찼다는 얘기다.

맞은편에서 초등학교 1·2학년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와 젊은 엄마가 자전거를 타고 오고 있다. 아이가 앞장서고 엄마가 뒤따르는데 한두 번 이리 나와본 게 아닌 것 같다. 힘도 안 들이고 타는 그 모습이 어찌나 싱그러워 보이던지 나를 지나쳐 간 지 한참이 돼도 눈앞엔 그 모습이 계속 잡힌다. 잠시 쉬겠다고 벤치에 앉았더니 서너 살 돼 보이는 아이가 씽씽 카를 타고 그 뒤를 엄마 아빠가 따라오고 있다. 그 모습이 또 어찌나 예쁘고 귀여운지 한참을 쳐다봤다. 일어나려는데 유모차 세 대가 함께 들어온다. 삼십 대로 보이는 엄마들이다. 저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들어오고 있다. 그 모습이 또한 아름다워 보였다. 며칠 전에 양재천을 걷는데 쌍둥이 유모차가 세 대나 가고 있었다. 기특하고 신기해서 아기들을 컨닝할 참으로 걸음을 빨리하여 지나치듯 하며 고개를 살짝 돌려봤는데 아차 모두 강아지 두 마리씩을 유모차에 태우고 가고 있었다. 유모차가 아닌 개모차였던 것이다. 강아지도 이쁘긴 하지만 아기인 줄 알았다가 허탈했던 기억에 지금의 유모차 엄마들은 내 딸이 아닌데도 마냥 이쁘고 고마웠다.

미금역에서 오리역 사이의 탄천엔 예쁜 징검다리가 한두 개가 아니다. 이렇게 징검다리가 많은 줄 몰랐다. 하나씩 지나칠 때마다 다 건너보고 싶었다. 징검다리를 열 개는 지난 것 같다. 자전거를 타겠다고 나온 얼마 안 되는 시간에 내가 만난 이 아름다운 풍경들로 행복한 마음 가득이다. 꽃만이 꽃이 아니다. 보이는 모든 것이 다 꽃이다.

기분 좋게 자전거의 페달을 힘껏 밟는데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흰꽃 분홍꽃들이 저희도 보아달라며 마구 꽃잎을 날려댄다. 바람을 안고 가는 내 앞으로 눈을 뜨기 어려울 만큼 흩뿌려 대는 꽃잎들이 마치 어린 날 여름밤 하늘의 은하수가 쏟아지는 것 같다. 잠시의 나들이로 이런 풍성한 아름다움에 함빡 취한다. 풍경들이 내 삶에 귀한 생명력으로 들어와 산골 샘물 같은 시원함을 맛보게 한다. 나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에 나를 칭찬해 준다. 누구 말마따나 허벌나게 좋은 날 환장하게 좋은 날씨에 이런 호강을 한다. 꽃이야 때가 돼서 피었다 지는 것이라 하겠으나 그래도 그게 어찌 신비롭지 않은가. 춥다했던 때가 바로 엊그제인데 입은 옷이 거추장스럽고 온몸에 땀이 배인다.

미세먼지도 없다는 맑은 날, 아래로는 물소리, 위로는 꽃향기, 내리는 햇살 받으며 페달을 밟는 내게 바람도 인사를 한다. 바로 이런 게 자연 속 호사가 아닐까. 서로 지나치는 이들과 눈인사를 나누는 것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동지 의식을 느끼는 것 아닐까. 꽃이 피는 천변을 달리는 마음 가득 비로소 완전한 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더욱 짙어질 나무들의 푸르름을 미리 내다본다.

생각하기 나름, 세상도 마음도 행복을 누리는 만큼이라지 않던가. 아이와 엄마가 내리는 꽃잎을 손에 받으며 마냥 즐거워하고 있다. 나도 그들과 함께 꽃이 되는 풍경으로 간다. 봄, 하늘, 꽃, 바람 속에 향기로움으로. 모두가 꽃이 되는 풍경 속에 나도 덩달아 꽃이 되는 풍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