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 이탈로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환자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의료진들의 피로도가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지역 수련병원들은 PA 간호사로 전공의 빈 자리를 메우며 간신히 의료대란을 막고 있지만, 이미 진료 과부하로 인한 번아웃에 응급실 연쇄 셧다운마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여기에 전공의를 대체할 전문의 등 인력 채용에도 난항을 겪으면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의 고통도 가중되고 있다.

11일 지역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전남대병원은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해 성형외과와 정형외과, 비뇨의학과, 심장재활과 등 4개 병동을 폐쇄했다.

신장내과와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 신생아중환자실 등 일부 병상도 줄줄이 중단됐고, 현재 총 181개 병상이 축소돼 운영 중이다.

전남대병원은 전공의 업무를 일부 대신할 수 있는 진료보조인력(PA) 간호사 비중을 확대했다.

병원에선 PA 간호사 150명이 근무 중이며, 지난해 52명이 근무한 것에 비해 3배 가량 늘었다.

응급실도 전공의 없이 남은 의료진들로 운영되고 있다.

전남대병원 응급실은 지난해까지 전문의 14명과 전공의 11명이 투입돼 전문의 2명과 전공의 3~5명이 3교대로 근무를 섰다.

전공의 이탈 이후에는 전문의 13명이 2명씩 3교대로 운영하고 있으며, PA 간호사 10명은 전공의들이 그동안 맡아왔던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조선대병원도 의료 인력이 부족한 탓에 55·75병동 2곳을 폐쇄했고, 12개의 입원병동만 운영 중이다.

PA 간호사는 현재 160여명으로, 전공의 집단 사직 전(80명)과 비교해 2배 가량 늘었다.

지난 5일부터는 매주 수요일(주 1회)마다 타 진료과의 의료진 지원을 받아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다.

전공의 이탈 전까지 조선대병원 응급실은 전문의 9명과 전공의 9명으로 운영됐지만, 현재는 전문의 7명이 2명씩 조를 이뤄 2교대로 근무하고 있으며 PA간호사 5명이 전공의를 대신해 업무를 보조하고 있다.

지역 한 대학병원 3년차 간호사 A씨는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각자 사명감을 갖고 일하기 때문에 빈 전공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며 “하지만 별다른 교육도 없이 처방과 CT촬영 등 각종 진료 동의서 받기처럼 전공의 업무를 보조하는 것은 부담도 있고 업무도 훨씬 가중된 게 사실이다”고 토로했다.

A씨는 이어 “과거부터 불규칙한 근무 환경에 번아웃 현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의사 업무를 대신하는 근무가 지속되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며 “현장에 지친 간호사 등 남은 의료진이 줄퇴사하기 시작하면 의료 공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공의 이탈에 따른 진료공백이 심화되자 우려되던 ‘응급실 뺑뺑이’도 현실화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8월 20일까지 광주·전남지역 응급실 재이송 건수는 139건(광주 42건·전남 97건)이었다.

이송 거부 사유로는 광주의 경우 ‘1차 응급처치를 했기 때문’이 21건으로 가장 많았고, 전문의 부재와 기타가 각각 8건이었다.

전남은 전문의 부재가 33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1차 응급처치 30건, 기타 21건 등 순이었다.

지난 5일 조선대에서는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대학생이 100여m 거리에 위치한 대학병원 응급실의 이송거부로 다른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기도 했다.

특히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은 전문의 중심 병원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진료 전담의 등 채용에 나서고 있지만, 지원자가 없어 난항을 겪고 있다.

지역 대학병원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인해 의료공백이 발생했지만, 응급실을 축소 운영할 순 없기 때문에 남은 의료진이 희생을 당하고 있다”며 “대학 수시 접수가 시작된 상황에서 의대 증원 백지화는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에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