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반년 넘게 이어지면서 의료 현장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의료개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으나, 의료계에선 전공의 복귀의 전제 조건으로 ‘의대증원 백지화’를 요구하며 여전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특히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응급실 등 진료공백이 우려되는 가운데 정부는 의료진 신규채용, 군의관 투입 등 대책을 내놨지만 이마저도 근본적 처방이 되긴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12일 지역 의료계 등에 따르면 오는 14일부터 닷새간 이어지는 추석 연휴가 ‘응급실 과부하’의 최대 고비로 꼽히고 있다.

지역 대학병원인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은 ‘응급실 대란’을 막기 위해 평상시와 동일하게 24시간 진료체계를 유지하며, 전공의 빈 자리에는 PA(진료보조) 간호사가 투입된다. 전남대병원은 응급실에 전문의 13명, PA 간호사 10명 등을 투입해 3교대로 운영하며, 조선대병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2교대(2명), PA간호사 3교대(1~2명)로 운영 방침을 세웠다. 또, 매주 수요일 타 진료과 전문의를 응급실에 투입하는 방침을 이번 연휴기간 유보하기로 했으며, 추석 연휴가 끝난 이후에 타 진료과 전문의를 대체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의료공백 여파로 국립대 어린이병원의 경우 추석 연휴 기간 응급실 정상운영이 어려울 전망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백승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전국 6개 국립대 어린이병원 운영 현황을 확인한 결과 부산대, 전북대, 전남대 등 3개 병원이 의료대란 이후 의료진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대 어린이병원의 경우 인력 부족으로 인해 응급실 내원환자 중 초중증환자 위주로 진료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아과 관련 전체 진료과 의료진은 전공의 집단 이탈 전 42명에서 39명으로 줄었고, 이중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19명에서 17명으로 감소했다.

전남대 어린이병원 응급실 정상 운영을 위해선 소아청소년과 응급실 전담의사 4명이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 관계자는 “올해 초 신생아분과 전문의 사직으로 신생아중환자실이 축소 운영 중이며, 응급실은 추석 연휴에 정상 운영이 불가능할 것이다”며 “공보의 인력 파견이 종료될 경우 주간 응급실 운영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비응급 경증 환자의 경우 추석 연휴 응급실 방문 자제를 권고하며 동네 병의원 이용을 요청했으나 의료 취약 지역일수록 진료 차질이 예상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명절 기간 운영 의료기관 실태 조사’에 따르면 추석 당일인 17일 문을 여는 전남지역 의원은 13개소, 광주는 10개소에 불과했다. 전남 시·군이 22개인 점을 고려하면 문을 여는 의원이 1곳도 없는 지역이 있을 수 있는 셈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이 문을 여는 지역은 서울 163개소였고, 그 다음으로 경기 156개소, 인천 57개소 등으로 수도권에 집중됐다.

서구 주민 김모씨(71)는 “의료진 부족으로 진료 예약 잡기도 힘들고, 대기 시간도 너무 길어 불편하다”며 “추석 연휴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을 것 같아 더욱 걱정이 된다. 정부와 의사들이 조금만 양보해서 빠르게 정상화를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전공의 이탈로 인한 의료공백으로 인해 시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지만, 의정갈등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정부와 여당은 대한의사협회(의협)에 ‘여·야·의·정 협의체’를 만들어 2026년 의대 정원에 대해 협상하자고 제안했지만, 의협은 의대증원 백지화가 전공의 복귀를 위한 최소조건이라고 반박했다. 2025년과 2026년 의대증원을 취소하고, 2027년 정원부터 논의하자는 것이다.

지역 의료계 역시 △추석 연휴 진찰료 등 건강보험 수가 인상 △의료현장 공보의·군의관 배치 △응급실 의료진 400명 신규채용 등 대책은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의사인력의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지역 의료기관에 대한 지원 확대와 의료인 처우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지역의 한 의과대학 교수는 “정부는 의료계와의 갈등을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의대생과 전공의를 복귀시키려면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의료 현장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의대 3학년 학생은 “학생들 사이에서 정부의 입장이 계속된다면 의대에 복귀할 명분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7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의정갈등에 교수들 역시 해결 방안이 없다는 인식이 강하며, 심지어 일부 교수들은 사직까지 고려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끝>







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