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동구가 외국어 불법 간판을 단속하기 위해 시행한 ‘옥외광고물 사전경유제’가 처벌 규정 부재로 유명무실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수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추진한 ‘외국어 간판 한글 병기 사업’의 경우 강제성이 없는데다, 대부분의 상인이 매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반대하면서 탁상행정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게 됐다.

28일 동구에 따르면 ‘옥외광고물 사전경유제’를 올해 5월부터 동명동 카페거리 일대로 확대했다.

옥외광고물 사전경유제는 불법 광고물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시행된 제도로, 각종 영업 인·허가 신청 시 광고물 관련 부서에 간판 설치에 대한 안내를 받아야만 한다.

동구는 무분별한 불법 외국어 간판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2021년부터 충장로 1~3가 일대에서 사전경유제를 실시했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옥외광고법)을 살펴보면 간판은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한국어 표기’가 원칙이다.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문제는 해당 조항에 따라 건물 4층 이상 높이에 설치된 간판에 대해서만 해당된다는 점이다. 1~3층 높이 설치 간판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외국어 간판을 많이 쓰는 카페, 음식점, 상점은 대부분 1층에 있다. 게다가 간판 면적이 5m²이하인 경우에도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데, 대부분 중소형 상점의 간판이 적용되지 않는다. 즉, 규제 적용 범위가 협소하다보니 외국어 간판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때문에 사전경유제를 실시한 이후 지난 6월까지 98건의 인·허가 요청을 받았으나, 제재된 사례는 단 한건도 없었다.

또 충장로 1~3가 일대에서만 사전경유제가 실시되면서 동명동 등 이외 구역에서는 외국어로만 적힌 간판이 우후죽순 발생한 상황이다.

별도 단속한 사례도 전무했다. 최근 3년간(2021~2023년)간 동구가 간판과 관련한 옥외광고물법 위반 단속 건수는 9건이었으며, 이 중 외국어 간판과 관련된 단속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 동구가 외국어 간판에 불편을 겪는 주민과 관광객에게 정보를 쉽게 전달하고 한글의 가치를 보존하고자 추진하는 외국어 간판 한글 병기 사업도 밑빠진 독에 물 붓기로 전락됐다.

올해 5월부터 진행한 해당 사업에는 구비 2,000만원이 투입된다.

동구가 올해 6~7월 외국어 간판을 사용하는 120곳의 업장을 대상으로 한글 병기 사업 수요조사를 실시했고, 이중 87곳(72.5%)이 간판 수정을 거절했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외국어 간판이 전문성과 현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매출과 직관돼 있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동구는 다음달까지 병기 사업에 대해 찬성한 33곳의 업장을 대상으로만 한국어 간판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이에 옥외광고물 사전경유제와 외국어 간판 한글 병기 사업이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와관련 동구 관계자는 “옥외광고물 사전경유제는 사실상 의무는 아니고, 외국어 간판의 허용 범위가 넓어 별도로 처벌할 수도 없다”며 “업주에게 ‘한글도 함께 써달라’고 부탁하는 것 외에는 따로 방법이 없다. 조례 개정 등을 올바른 간판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