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나고 국민의 삶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차분함과는 거리가 멀다. 설 민심을 두고 여야 정치권은 서로 아전인수격 해석으로 치고받기 시작했다. 국민의 요구는 경제를 살리라는데 있었지만, 여야는 제 입맛에 맞는 목소리만을 민심이라고 우기며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으로 시작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탄핵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구속과 수사의 정당성을 두고 설전을 벌이던 것을 넘어 이제는 일부 헌법재판관에 대한 공격이 도를 넘어서면서 국민의 우려를 덜기는커녕 걱정만 더 하고 있다.

경제 역시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불확실성과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기업들은 미국의 관세 폭탄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하고 중소기업, 영세 소상공인, 자영업자, 월급쟁이 할 것 없이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설 연휴에도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이어지면서 국민은 가슴을 쓸어내리기를 반복했다. 달라진 것은 별로 없고 대립과 갈등, 걱정과 어려움이 격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더구나 이달에는 윤 대통령 수사와 탄핵 심판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고 대선 후보 지지율 1위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2심 결심공판 등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정이 예정돼 있어 여야의 싸움이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대화와 타협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설 연휴를 전후해 쏟아져 나온 여론조사는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가 6대4 정도로 갈리고 있지만, 여당과 야당의 지지율이 엇비슷하게 나오면서 진영 간의 결집이 강화되고 죽기살기식 싸움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내놓고 이야기하진 않지만, 여야 모두 조기 대선을 기정사실로 여기며 차기 대선을 노리는 주자들이 하나둘 몸을 풀기 시작했거나, 이미 뛰고 있어 앞날을 예측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정치적 혼란이 정리되고 경제가 살아나야 국민이 편안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두말할 나위도 없고 강조하면 입만 아프다. 정치권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 정부와 여당과 야당은 늘 국민을 앞세운다. 침도 바르지 않고 뭘 해도 국민을 위해서고 국민이 원해서라고 한다. 정책을 세우고 법을 만들고 세금을 올리고 내리는 것도 국민의 뜻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밥 먹는 것과 숨 쉬는 것조차 국민을 위해서라고 할 판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정치권에서 말하는 국민이 오천만 대한민국 국민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국민이 따로 있고, 여당의 국민이 따로 있으며 야당의 국민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다. 우리 진영을 지지하는 국민, 나에게 표를 주는 국민만이 정치권에서 말하는 위하고, 원하고, 받드는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일부 정치인들은 국민의 이런 생각이 틀렸다며 되려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 혐오와 정치에 대한 불신은 국민 탓이 아니라 오로지 정치권의 책임이다. 단언컨대 내가 잘되기 위해서, 내가 가진 알량한 권력의 크기를 키우고 유지하기 위해 상대방을 조롱하고 짓밟고 죽이는 정치권의 방식에서 비롯됐다.

그렇지만, 이는 국민의 방식이 아니다. 국민은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바란다. 나와 내 가족과 내 친구들과 내 아웃, 내가 속한 공동체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배려하면서 함께 잘 살기를 원한다. 이게 국민의 방식이다.

긴 설 연휴를 지내고 국민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회사원은 회사로, 자영업자는 가게로, 택시 기사와 버스 기사는 운전대 앞으로 복귀했다.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현실과 마주했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신발 끈을 동여맸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열심히 뛰고 있다.

정치권의 할 일은 국민이 제 할 일을 하면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헌재는 신속하고 공정하게 탄핵 심판을 진행하고, 수사기관은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하고 그 결과를 모두가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치권의 당면 과제다. 탄핵이 인용되건 기각되건, 내란 우두머리 혐의가 유죄가 되건 무죄가 되건, 그리고 야당 대표의 재판 역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차분하고 공정하게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 그 결과를 존중하고 승복하면서 편 갈라 싸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경제도 민생도 정치가 잘해야 안정된다. 그만큼 정치권의 책임이 막중하다. 국민이 욕하면서도 정치권에 바라고 기대하는 이유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신중하고 스스로 엄격하길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