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와 전남의 하늘길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광주 민간·군공항의 무안국제공항 이전 논의가 불투명 지고, 공항 정상화도 장기화되자 관광업계를 중심으로 광주공항 임시 국제선 유치 움직임이 이는 등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고사 위기에 처한 관광업계의 타개책이 필요하다는 광주의 입장과 광주공항 역시 안전시설 개선 대상이라는 점과 서남권 관문 육성 등 무안공항의 재도약을 강조하는 전남의 주장이 맞서며 공항 갈등이 다시 불거지는 양상이다.

무엇보다 이번 논란이 광주공항 국내선 존치와 기능 강화의 단초가 되는 등 공항 이전을 비롯, 무안공항 활성화의 발목을 잡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양 공항 문제에 사실상 뒷짐을 졌던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하고 있다.

9일 광주시와 전남도에 따르면 광주시는 오는 11일께 국토교통부에 ‘광주공항 국제선 임시 운항’에 대한 검토를 공식 요청할 계획이다.

국토부 방문에는 국제선 임시 운항을 촉구해온 광주관광협회가 동행해 무안공항 폐쇄 이후 지역 여행업계의 경영 악화 사례 등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공항은 지난 2007년까지 일본과 동남아 등지를 운항하는 정기편과 전세기가 이·착륙했고, 같은 해 11월 무안국제공항이 개항하면서 국제선 기능을 넘겼다.

광주시의 이 같은 움직임에 전남도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남도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국토부의 공항 특별안전점검 결과 광주공항도 안전시설 개선 대상에 포함돼 안정성 확보를 위한 시설 보수가 필요한 상태라는 점을 우선 지적하고 있다. 국제선 운항 기본 요건인 세관, 출입국 관리, 검역시스템부터 관제라인 구축까지 최장 2년여가 소요되는 점도 부연하고 있다.

또 임시 국제선 유치의 필요성 중 하나로 꺼내든 2025 세계양궁선수권대회 지원에 대해서도 세계양궁선수권이 국제경기대회 지원법상 국제선 유치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 지난해 9월 광주시의 국제선 취항 신청이 국토부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는 점 등을 분명히 하고 있다.

4월에서 7월은 여행 비수기로 무안국제공항의 이용객 추이 분석결과 이용률이 저조해 광주공항 임시 국제선 유치는 실익이 없다는 것도 전남도의 설명이다.

도 관계자는 “무안국제공항은 빠르면 8월 재개항을 목표로 항행안전시설 조기 확충 등을 추진하고 있다”며 “지금은 무안국제공항이 서남권 대표 관문공항으로 재도약할 수 있도록 광주시와 전남도가 조기 정상화를 위해 함께 노력할 시기이며, 더 이상 불필요한 논쟁이 진행되지 않도록 광주시의 대승적인 상생협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임시 국제선 유치 논란이 광주 군공항의 함평 이전이나 광주공항 국내선 존치 및 기능 강화 등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광주시 ‘플랜B’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공항 이전 적합지로 거론돼 온 무안공항이 안전성과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광주에서 임시로 국제선 부정기 노선이라도 띄워야 한다는 여행업계 의견이 현실화할 경우 두 공항을 통합해 무안공항을 서남권 관문공항으로 집중 성장시켜야 한다는 구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광주시는 “광주공항 임시 국제선 운영은 국토부에 절차를 확인하는 단계”라면서도 “근본적인 공항 이전 문제는 시민 안전이 가장 중요한 만큼 시도민과 전문가 의견을 모아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며 군불을 떼고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더 나아가 “제주항공 참사의 사십구재가 끝나는 2월 중순 이후부터 의견을 모아 창의적인 생각을 통해 무안공항과 광주공항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호남 관문 공항 발전 방안에 대해 사실상 재검토에 들어가겠다는 주장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내년 지방선거가 임박해서는 ‘뜨거운 감자’인 공항 문제의 실타래를 풀기가 어렵다는 면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론이 부상하고 있다.

광주 군·민간공항 이전 논의는 무안국제공항 개항 때부터 본격화됐으나 광주시·전남도·무안군이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광주시는 군공항 이전을 전제로 한 민간공항 이전을, 전남도는 군공항 이전과 별개로 민간공항의 무안 우선 이전을 주장해왔다. 무안군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군공항 이전을 반대 중이다. 당사자인 세 지자체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지난해 말 공항 이전 논의를 위한 범정부 협의체를 3년 만에 재개하려고 했으나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무기한 연기됐다.

세 지자체장이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만큼 민주당 차원에서도 특별위원회(TF)를 구성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려고 했으나 이 역시 정국 혼란으로 구성이 미뤄지고 있다.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광주 군·민간공항의 무안 통합이전 계획이 제주항공 참사 이후 모두 어긋난 상황에서 여행업계를 매개로 다시 갈등 양상으로 돌입하는 형국이다”며 “지난 수년간의 사례에 비춰 입장차가 첨예하게 갈리는 광주시, 전남도의 협상으론 해법 마련이 어려운 만큼, 공항 문제가 더 큰 수렁에 빠지기 전에 무안공항을 서남권 관문 공항으로 육성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