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성지인 광주 금남로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려 물리적 충돌이 우려됐지만, 광주 시민들의 질서 있는 성숙한 대응에 별다른 마찰 없이 마무리됐다. 비록 극우보수단체와 지역 시민들간 탄핵을 둘러싼 언쟁이 오갔지만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탄핵 찬반 진영에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금남로 일대를 중심으로 교통 혼잡이 빚어지기도 했다.



●‘탄핵 촉구’ 전국서 방문 행렬

지난 15일 오후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245 앞 도로에서 열린 ‘제14차 광주시민총궐기대회’에는 광주 시민들뿐만 아니라 서울, 강원도 등 전국 각지의 시민들도 참석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헌정 질서를 유린한 비상계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내란 우두머리로 지목되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했다.

시민들은 ‘내란수괴 즉각파면’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지인과 함께 인증샷을 찍었고, 무대 지시에 따라 구호를 외치며 집회 열기를 고조시켰다.

비상계엄 정당화를 주장하는 극우보수단체의 집회 장소와 불과 50m 떨어져 있었지만, 시민들은 그들의 외침에 차분하게 대응하며 집회를 이어나갔다. 이날 총궐기대회에서 자유발언에 나선 2030세대들도 계엄군에 맞서 싸운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강조하며 극우보수단체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에서 온 직장인 A씨(30대)는 “1980년 광주는 우리 모두를 구했고, 당시 광주에 진 빚을 생각하면 서울은 전혀 먼 거리가 아니다”며 “내란 동조 세력과 잔당들을 처벌하는 길에 항상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강원도에서 거주하는 대학생 B씨는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극우보수단체들이 기어이 민주화 성지인 광주에 왔다”며 “이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자 광주 시민들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들의 진흙탕 싸움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며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고, 무엇이 진짜 민주주의인지를 똑똑히 보여줘야한다”고 말했다.

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는 “45년 전 전두환의 만행 때문에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데, 지금은 내란범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며 “사악한 선동자들과 그 추종자들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내란을 지속해 가슴이 미어진다”고 전했다.



●“광주서 비상계엄 옹호 집회 안돼”

윤석열 탄핵 찬반 집회가 열린 금남로 일대에서는 극우보수단체와 광주 시민들간 언쟁이 오가며 사소한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전일빌딩245에서 금남로 5가로 이어지는 인도 구간, 시민들이 통행을 위해 지나가던 도중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과 말다툼을 벌이며 고성이 오갔다.

다행히 몸싸움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시민들은 5·18 정신을 계승하는 광주에서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집회가 열릴 수 없다며 항의했다.

극우보수단체는 ‘탄핵 무효’, ‘빨갱이는 북으로’, ‘진보당은 종북좌파’ 등 구호로 맞섰고, 극우 유튜버 안정권씨도 오전 11시 집회와 오후 6시 금남로 일대 행진을 하며 시민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서울에서 온 홍기창씨(62)는 “광주 사람들의 정신을 좀 바꾸고 싶어 방문했다. 너무 한쪽으로 쏠려 옳고 그름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국회의원들조차 불의에 처한 대통령의 억울함도 풀지 못하고, 대한민국 전체 국민들의 행복과 사랑을 되찾기 위해 광주를 방문했다”고 말했다.



●전일빌딩~흥국화재빌딩 차벽

경찰은 탄핵 찬반 진영간 물리적 충돌을 우려해 집회가 동시에 열린 금남로를 2개의 공간으로 나눴다.

이날 비상계엄 이후 광주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는 지난 8일 보수 유튜버 안정권씨가 열었던 집회 이후 두 번째로, 그동안 광주에서 열렸던 보수진영 집회 중 가장 큰 규모인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전일빌딩245 건물과 흥국화재 빌딩 사이에 기동대 버스 6대로 차벽과 폴리스 라인을 설치했고, 기동대 20여개 중대 등 충분한 경찰력을 배치해 안정적인 집회 관리에 나섰다. 이후 보수단체의 집회가 끝나갈 무렵 양측 진영의 시민들이 섞일 것을 우려해 차벽을 세운 지점을 기점으로 2곳 인도의 통행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도심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금남로와 남구 사직공원 등 주변 도로는 극심한 정체로 혼잡을 겪었다. 경찰은 금남로 일대를 중심으로 경찰을 배치해 원활한 교통 흐름을 유도했으나 부산, 대구 등에서 온 전세버스들이 옛 전남도청 사거리와 사직공원 앞 도로 한 차선을 가로막으면서 교통체증이 가중됐다.

최환준·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