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1년째 이어지면서 지역 의료 시스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공의, 의대생의 복귀가 요원해지면서 의대 졸업-전공의 수련-전문의 취득으로 이어지는 의사양성 체계가 무너진데다 의료인력 수급 차질로 인한 진료공백으로 시민들의 불편도 커지고 있다.

특히 비상진료체계로 전환해 운영 중인 지역 대학병원의 경우 진료 전담의사 등의 채용에 난항을 겪고 있고, 지역 의대 역시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으로 졸업식이 취소되거나 축소되는 등 의정갈등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9일 지역 대학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 사직한 전공의는 전남대병원 224명, 조선대병원은 108명에 이른다.

각 병원은 지난해 8월 전공의들이 제출한 사직서를 처리했고, 의료 공백에 따른 진료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비상진료체계로 전환했다.

지난 1월 기준 전남대병원은 전공의 정원 345명 중 10여명만 근무하고 있으며, 조선대병원은 173명 중 6명에 불과하다.

전공의 이탈로 업무 과부하가 심해지자 대학병원은 진료전담교수 등을 수시로 채용하고 있으나 모집 지원자가 드물어 인력 수급에 애를 먹고 있다.

최근 정부의 방침에 따라 올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와 상급년차, 인턴 등 전공의를 모집했으나 지원자가 저조한 수준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은 신규 간호사를 임용해 의료 현장에 투입했고, 전공의 업무를 일부 대신할 수 있는 진료보조인력(PA) 간호사 비중을 확대해 운영 중이다.

조선대병원 관계자는 “지난해 전공의 이탈 이후 현재까지 1년간 병원 의료진이 인력난에 힘겨워하고 있다”며 “특히 전공의가 없다보니 그 업무까지 의대 교수들이 도맡아야 해 업무 과부하로 인한 피로 누적에 지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의정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의사 양성 체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대생은 본과(의학과) 4학년을 졸업하면 의사 국가고시 응시 자격이 주어지며, 전공의들은 인턴 1년, 레지던트 3~4년 등 수련을 거친 뒤 시험을 통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하지만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이 장기화되면서 학사일정 파행 등 의사 배출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 1월 기준 전남대 의예과·의학과 재적생 736명 가운데 휴학생은 699명으로 집계됐다.

조선대는 지난해 휴학생을 포함한 의대생의 복학 신청을 지난 14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1차로 접수받았지만 극소수에 그쳤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으로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하자 조선대 의대는 이날 미니 졸업식으로 대체했다.

조선대 의대 한마음홀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는 의학과 및 의전원 졸업대상자 4명 중 3명만이 참석했다. 평소대로라면 120여명의 졸업생이 학사모와 학사복을 입고 학위 수여식에 참여했지만, 작년부터 이어진 의정 갈등으로 인해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한 것이다.

의대 졸업생 A씨는 “지난 6년간 의대 생활 중 의정 갈등으로 동기들이 집단 휴학을 하는 등 다양한 일이 있었다”며 “시간이 흘러 졸업할 때가 됐고, 지금까지 마주한 상황을 신경쓰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의정갈등 여파로 대학병원의 운영 적자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남대병원의 적자는 677억 4,700만원이었다.

의정갈등 전인 2023년 적자 228억 3,000만원보다 약 3배 가량 늘었다.

특히 전국 11개 국립대병원 중 서울대병원, 경북대병원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적자 규모를 기록했다.

최운창 전남도의사회 회장은 “의정 갈등이 어느덧 1년이 지나가면서 응급실 운영 차질 등 지역 의료 시스템 전반이 무너진 상황이고, 앞으로 의정 갈등이 1년 더 지속될 경우 상상하기도 힘들다”며 “현재 정부에 원점에서 협의할 것을 제안했으나 정부의 입장은 의료계의 입장과 사뭇 다르다. 우선 의대생과 전공의가 대학과 병원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정부가 진정어린 사과를 통해 대화에 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환준·이수민 기자

조선대학교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