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어요. 30년 넘게 한우를 키웠지만 구제역은 처음입니다. 무섭고 답답하네요. 더 이상 확산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만 간절합니다.”

그동안 청정지역으로 남아있던 전남이 구제역 파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 구제역이 발생한 건 1934년이었다. 당시에도 전남은 구제역으로부터 안전지대였다. 이후 60여년. 결국 무안과 영암에서 잇따라 구제역이 터져나오자 전남지역 축산농가들이 당혹감 속에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작업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17일 오전 영암군 군서면 동호마을. 이곳에서 송아지 40마리 등 한우 350마리를 사육하고 있는 이순호씨는 “영암의 농장 4곳이 확진됐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축사를 소독하고 농장 입구에 방역시설을 가동했다”며 “차량 이동에 대비해 농장 입구에 생석회도 깔아놨다”고 말했다.

이씨의 농장은 구제역이 확진된 군서면 농장으로부터 반경 3㎞ 방역대 내에 위치해 있다. 직접 방문이 차단돼 전화로 이뤄진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엔 팽팽한 긴장감이 그대로 배 있었다.

“우리 마을은 10개 축사에서 한우 600마리를 키우고 있다”고 동호마을 한우사육 현황을 소개한 이씨는 “인근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구제역은 인수공통전염병으로 바람 등을 타고 전파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마침 우리 마을이 발생 농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서둘러 면사무소에서 백신을 받아 바로 접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구제역은 소, 돼지, 양 등 우제류가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돼 발생하는 질병으로 전염성이 강해 국내에선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지정돼 있다. 감염동물의 수포액이나 호흡, 분변 등에 의한 직접 전파와 감염 지역 내 사람이나 차량 등에 의한 간접전파는 물론 바람을 통해서도 전파된다.

이씨는 “이미 발령한 건 어쩔 수 없지만 문제는 추가 확산 여부다. 백신 접종 후 항체가 형성되려면 2주 정도 걸리는데, 그 기간동안 최선을 다해 방역활동을 하는 수 밖에 없다. 제발 더 이상 확산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이번 구제역 발병으로 지역 축산업계에 불어닥칠 후폭풍도 큰 걱정거리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오늘이 영암 우시장이 서는 날인데 폐쇄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축산농가들이 사룟값 인상에 소값 하락, 소고기 소비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구제역까지 발생했다. 엎친데 덮친 격이다. 정말 암담하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구제역 발생은 축산농가에 마이너스다. 발생 농가는 향후 2년간 입식이 제한되고, 정부 보상은 피해액의 80% 수준이어서 손해가 크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구제역 확진지역인 무안에서 한우 150마리를 키우고 있는 박석환 전국한우협회 무안지부장은 “설마 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됐다. 지역 축산농가 대부분이 망연자실하고 있다”고 지역내 분위기를 전했다.

무안에서는 1,300여 농가가 한우 4만1,000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박 지부장은 “당분간 누가 전남산 소와 소고기를 사서 먹겠냐”며 “소비자들은 가축 질병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소비 감소와 소값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고 전망했다.

이어 “축사가 구제역이 발생한 일로읍에서 거리상 30~40㎞ 떨어져 있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방역당국의 지시와 상황 전파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나주 왕곡면에서 한우 100마리를 사육하는 나상필씨도 “구제역 발생 이후 축산농가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안부를 묻는 모임과 행사를 모두 기피하고 있다. 농가들은 구제역 감염 경로와 원인을 궁금해하고 있다”며 추가 확산에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나주시는 무안군과 영암군 경계에 통제초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구제역 발생 지역과 10㎞ 반경에 포함되는 반남면과 세지면, 공산면, 동강면 축사 농가에는 소독약을 배부하고, 백신접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나씨는 “백신접종과 축사 방역 외에는 다른 대응책이 없다”며 “구제역에 지역으로 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17일 현재 전남에서는 영암 4건, 무안 1건 등 총 5건이 발생했다. 전남에서는 1만8,000농가에서 우제류 214만 마리를 사육 중이다. 소는 1만6,000농가에 68만3,000마리, 돼지는 485농가에 138만7,000마리, 염소는 1,700농가에 11만4,000마리다. 지난해 기준 항체 형성률은 95%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