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122일 만에 파면되면서 답보 상태에 머물던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45년 전 신군부 독재와 맞서 싸운 광주의 모습처럼 비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인 비상계엄을 심판하기 위한 국민들의 저항·나눔 정신이 확산되면서 헌정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5·18 역사 왜곡·폄훼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 제정됐음에도 극우보수단체 등을 중심으로 가짜뉴스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정치·사회적 갈등과 분열은 가속화되고 있다.

오월 정신 계승을 통한 민주주의의 기틀 확립을 위해 ‘헌법 명문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는 이유다.

양재혁 5·18민주유공자유족회 회장은 9일 “윤 전 대통령의 파면 선고는 오월 정신이 잊혀지지 않고 오늘날에도 살아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오월 정신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임이 입증된 셈이다”며 “그런 만큼 비상계엄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굳건히 하기 위해선 오월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양 회장은 또 “가장 시급한 과제는 진상규명이다”며 “45년이 지났지만 가해자와 관련자들은 여전히 그날의 진실을 함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헬기 사격, 암매장 의혹, 발포 명령자에 대한 진상 규명은 시간이 지체될수록 증거가 사라지고 있고 관련자들의 고령화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더는 늦출 수 없는 과제다”며 “새 정부는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 가해자와 화해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의 조치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역사적 정의는 곧 미래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고 강조했다.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도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염원을 나타냈다.

김 관장은 “오월의 정신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닌,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살아있는 역사”라며 “역사 왜곡과 폄훼를 막고 온 국민이 5·18 정신을 배우고 계승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5·18 정신이 헌법에 수록돼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가 바로 새겨지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하지만 “5·18 특별법에 따라 꾸려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4년간의 결과물은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며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새 정부에서도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 진상규명 뿐만 아니라 진실이 확인되면 그에 맞는 명예회복과 보상도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기 전남대 5·18연구소 소장은 “앞으로 정치·사회적으로 5·18 정신 헌법 명문화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광주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닌, 모든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종합보고서 작성을 위한 조사 자료 등의 경우 5·18기념재단이나 5·18기록관 등에서 열람할 수 없는 상황이다”며 “현재 행정안전부 정부기록보관소에서 보관 중이며, 이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관련 법안 처리가 지연됐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민이나 연구자들이 해당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며 “5·18 역사 왜곡·폄훼를 막기 위해선 서울·대구·부산 등 타 지역 민주화운동 단체와의 연대를 통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순석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새 정부는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대국민 권고사항 11가지를 받아들여 실현해야 한다고 밝혔다.

원 이사장은 “여기에는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반영하는 것과 5·18민주화운동기념사업기본법 제정 등이 있다”며 “5·18 역사 왜곡·폄훼가 시도되는 상황에서 이를 근절할 국가적 차원의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비자금과 부정 축재 재산을 환수해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조치들이 강력한 힘을 가질 때 5·18 관련 피해자들의 치유와 명예회복은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환준·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