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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야만의 역사, 지성 상실의 전라도천년사

2023. 05.25. 16:02:59

박동 위원

<기고>야만의 역사, 지성 상실의 전라도천년사
박동 바른역사시민연대 자문위원


“역사적 정체성을 갖지 못하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없고, 결국 뿌리가 뽑힌 채로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필자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 정책을 담당하던 무렵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남 서남해안 저발전 문제의 근본 원인을 두고 한 말이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그 이전의 인식을 뛰어 넘는 것이었고, 한국전력 등 가장 큰 규모의 공공기관 지방이전으로 이어졌으며, 국립나주박물관도 신설됐다.

나주 반남의 삼포강 갯벌에서 놀고 자랐던 필자가 지역발전 정책을 실행하면서 호남의 고대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모든 역사교과서가 이병도씨의 ‘한국고대사연구’라는 편향되고 입증되지 않은 주장에 입각해 쓰이고 가르쳐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공개된 전라도천년사(이하 천년사)를 접하면서 다시 이병도씨 매국사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접하게 되었다. 천년사는 광주·전남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니라 수치스러운 역사로 가득차 있으며, 근거도 없이 전라도 역사를 전북도 역사로 뒤바꾸어 놓았다. 그 과정에서 고조선 역사는 서기전 10세기로 축소되었다. 특히 고조선 부분은 기본적 팩트조차 맞지 않고, 여러 곳에서 연대가 틀리게 작성하였다. 그리고 마한사는 전북 익산을 중심지로 재편시키면서 ‘일본서기’ 신공왕후의 가야 정벌과 마한 정복이라는 기록을 백제 근초고왕으로 바꾸어 해석한 이병도씨의 식민사관이 아무런 여과없이 전재되었다. 전북도에서 천년사 편찬을 주관하면서 차제에 마한사의 중심축을 전북으로 뒤바꾸겠다는 의도를 명백하게 드러내면서 비지성과 야만의 역사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첫째, 마한 성립이 삼국지 한조에 등장하는 준왕의 남천, 즉 익산 이주를 계기로 이루어졌으며, 익산과 전주 일대가 마한의 치소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같은 사서에서 진한인들이 진역(秦役)을 피해 마한으로 망명했다는 기록과 정면 배치된다. 장성을 쌓는 고역은 진시황이 죽은 서기전 210년에 중단되었다. 그렇다면 준왕의 이주는 서기전 194년에 벌어진 사건이므로 마한 성립과 동떨어진 사건이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둘째, ‘삼국지’에는 마한 치소가 분명히 월지국(月支國)이라고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하고 익산의 건마국(乾馬國)이 치소라는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삼국지의 기록과 고대 지명을 종합해 살펴보면 마한 치소 월지국은 나주 반남에 위치한 것으로 나타난다. 마한 치소가 건마국, 즉 지금의 익산이라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고대 영산강을 중심으로 전남지역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2만5천여기의 고인돌이 세워져 이곳에 세계적 문명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남 화순 대곡리에서는 기원전 3세기 청동기 시대 유물인 팔주령, 세형동검 등 고조선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천년사에서는 이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 아울러 왕들만이 착용가능한 금동관과 그 파편들이 꾸준히 발굴되었음에도 광주·전남에는 마한 소국만이 존재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셋째, 일본서기 신공왕후 49년조를 근거로 신공왕후 또는 근초고왕이 가야 7국을 정벌하고 마한의 남만 침미다례를 도륙하여 전남지역에 진출했다는 근거도 없고 야만적인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여년 간 꾸준히 주장되어온 것으로 원 저작자는 이병도씨이다. 일본서기에는 신공왕후가 백제장군인 목라근자에게 명령해 가야 7국을 정벌하고 마한 침미다례까지 도륙했다는 황당한 주장이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이병도씨는 일본서기의 249년을 2주갑(120년) 인하해 정벌 주체를 근초고왕으로 바꾼 다음, 목라근자를 근초고왕의 휘하 장수로 둔갑시켜 한강 유역의 십제가 가야와 마한을 정벌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369년 근초고왕이 여름과 겨울에 고구려와 전쟁을 하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이러한 설화적 주장은 그동안 광주·전남의 고고학적 연구에 의해 근거 없음이 입증되었음에도 천년사에서 지성과 비판적 인식이라는 이름으로 재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목라근자(木羅斤資)는 백제 대성팔족 목씨의 중시조로 나주 회진 아파트형 고분의 피장자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전라도의 역사를 밝혀내는 일은 2중 3중의 굴레를 벗어내야만 가능한 지난한 일이다. 천년사는 자신들만의 아성을 구축해온 국내 고대 사학계가 집결해서 만들어낸 것으로 ‘이병도의 화려한 부활’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전라도 사학계의 역사 왜곡은 수많은 비판의 물결로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바른 역사에 대한 열망은 화산처럼 폭발할 수밖에 없다. 광주·전남인들은 고립무원 상태에서 수많은 굴레를 벗고 광주민주항쟁을 위대한 승리로 만들어낸 바 있다. 이제 호남인들은 역사투쟁에서도 기존의 비지성과 야만의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새롭고 올바른 역사를 반드시 세워 나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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