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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매광장>치유, 예술의 힘

2023. 08.10. 09:28:40

<전매광장>치유, 예술의 힘
곽규호 광주문화재단 경영혁신본부장

‘양림동 소녀’라는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0분 분량의 이 영화는 주인공이자 감독인 임영희씨의 이야기입니다. 진도에서 태어나 광주로 유학을 왔고, 양림동의 수피아여중고교를 다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양림동에서 살았던 ‘진짜’ 양림동 소녀였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학생운동에 함께했고, 성인이 된 20대 후반쯤 5·18민주화운동을 겪었습니다. 시민군으로 홍보활동을 했고,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1982년에는 윤상원·박기순 영혼결혼식을 담은 노래극 ‘빛의 결혼식’ 녹음에 참여했습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탄생한 그 곳 그 현장이지요.

2011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생활을 해오던 그가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은 독립영화를 만들던 아들의 그림을 그려 보시라는 권유로부터 출발합니다.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문가적인 선이나 색깔이 나올 수도 없었겠지요. 그렇지만 그는 계속 그림을 그렸고, 그린 작품을 놓고 설명하는 어머니 임영희씨를 아들 오재형 감독이 촬영하고, 피아노 작곡과 연주까지 직접 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양림동 소녀’입니다.

‘양림동 소녀’ 영화·전시

영화는 지난해 5월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 단편경쟁영화 부문 대상을 차지했고, 지난 달 광주 동구 소태동 생각상자갤러리에서는 영화 속의 그림들을 따로 모아 전시가 열렸습니다. 영화에서도, 갤러리에서도 이제는 60이 훌쩍 넘어선 ‘양림동 소녀’는 자신의 지난 삶을 그린 그림을 감독인 아들 앞에서, 아니 우리 모두를 향해 차분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동화 같은 선과 색으로 핵심을 묘사한 삽화 느낌의 그림에는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임영희씨의 삶이 담담하고 예쁘게 들어 있습니다.

특히 80년 5월의 광주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뇌졸중 후유증 탓에 왼손으로 그린 그림 속 80년 광주는 ‘신성한 광주 오월 공동체’였다고 합니다. “누구 한 사람 서로 총구녁 겨누고 싸우지 않고 은행도 하나 안 털고 서로 서로 보살피며 배려한, 그런 세상을 맛보게 된 것이 가장 큰 영광스러운 일이지.”(영화 ‘양림동 소녀’ 중에서) ‘양림동 소녀’라는 영화와, 같은 제목으로 진행된 전시회의 수채화 작품들, 영화 속 주인공 임영희씨를 보며 예술의 가치를 경험합니다.

영화도 전시회도 많은 울림을 남깁니다. 문학소녀였고 5·18 시민군이었으며 이제는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그림 그리기와 영화 제작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는 “영화와 그림을 본 감상자들의 반응을 통해 자존감을 선물로 가져다준 것”이라고 말합니다.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고문, 가슴이 터지기 직전까지 구타당했던 사람, 도망자의 삶을 살다 불면증을 갖게 됐고, 나중에는 급성뇌졸중으로 장애를 얻은 그에게 ‘자존감’을 갖게 한 것은 ‘그림 그리기’라는 예술 활동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린 그림과 영화는 다시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감동과 치유로 메아리칩니다.

“예술은 우리에게 심미안을 주고, 묵은 감정을 해소시키며, 감각을 넓혀 디테일에 주목하게 하고, 인간의 욕망을 이해하는 법을 알려주는 동시에 창조력과 통찰력을 키워주죠. 우리가 보다 단단하고 창조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능력들입니다.”(강은진 저 ‘예술의 쓸모’ 중에서) 창조력을 길러주기도 하지만 예술은 묵은 감정을 해소하는 힘, 치유의 힘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새겨듣고 보게 됩니다.

다양한 예술 체험 기회

광주에는 아직도 많은 시민이 80년 5월의 아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금남로에서 도청에서 당시 계엄군에 의해 사망한 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후에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문 폭행 등 국가폭력을 당했고 그 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그 곁을 지키는 가족들 또한 일상이 무너지고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술이 이렇게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다면 시민의 다양한 예술적 체험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겠지요. 문화기본법, 문화예술진흥법, 지역문화진흥법 등 예술 지원 정책의 법적 근거는 차치하고라도 향유와 치유의 예술을 넘어 풍요롭고 넉넉한 삶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예술의 가치를 다시 함께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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