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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매광장>햇볕정책은 절반의 통일 과정

2023. 08.16. 16:02:08

<전매광장>햇볕정책은 절반의 통일 과정
최영태 전남대 명예교수·한반도미래연구원장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4년이 되었다. 민주화, IMF 위기 극복, 정보통신(IT) 강국 건설, 복지국가의 초석 다지기, 문화예술 진흥, 4강 외교를 통한 대한민국의 위상 강화, 남북관계 개선 등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은 매우 많다. 이들 성과 대부분은 후임자들에 의해 계승, 발전하여 오늘날 우리 사회를 선진국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디딤돌 역할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4강 외교와 햇볕정책은 후임자들에 의해 크게 훼손 또는 부정당했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 송금 특검, 이명박 정부의 금강산 관광 중단,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윤석열 정부의 냉전 논리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후임 정부의 잇단 무시

남북문제는 그 풍향을 짐작하기가 어려운 주제이다. 잘 진행되는 경우도 언제 어느 때 장애물에 봉착할지 모르며, 또 남북 화해정책을 추진한 사람은 정치적으로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김 대통령은 1960년대 이래 40여 년 동안 일비일희하지 않고 햇볕정책을 다듬고 또 실천했다. 그것은 그가 민족문제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신념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1960년 4·19 혁명 후 들어선 제2공화국은 1년 후 발생한 5·16쿠데타에 의해 무너졌다. 그렇지만 4·19 정신은 그 후에도 면면히 이어져 유신 독재체제를 극복하는 정신적 원동력 역할을 했다. 1980년 5·18 광주항쟁은 5월 27일 계엄군의 도청 진압과 함께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5·18 정신은 그 후에도 계속 국민 마음속에 담겨 19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원동력 역할을 했다.

햇볕정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부에 의해 햇볕정책이 부정되고 말았지만, 김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통해 이룩한 성과들은 우리의 정신적·역사적 자산으로 계속 남아 있다. 또 그것은 남북이 향후 실천해야 할 미래 비전이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 공존공영, 그리고 통일은 전쟁을 통해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일이며, 결국 햇볕정책으로 상징되는 남북화해와 교류 협력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전 서독 총리의 동방정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1990년 독일 통일의 전후 과정에서 큰 교훈을 얻었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다. 김대중은 남북 협력에서 경제인의 역할을 중시했다. 그는 남북이 공존공영하고, 또 언젠가 있을지 모르는 통일 비용을 절감하려면 경제인들이 자유롭게 남북 협력사업을 행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개발은 정치인 김대중과 경제인 정주영이 손을 잡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에곤 바르(Egon Barr)는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의 최측근 인사로서 동서독 화해정책인 동방정책의 설계자였다. 그는 브란트 정부에서 내독성 장관(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20여 년 전 한국의 통일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개성공단을 소개받고 무릎을 치며 말했다. “놀라운 상상력이요. 내가 동방정책을 설계할 때 동독지역에 서독의 공단을 만든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개성공단을 확장해서 계속 따라가면 그 중간에 경제 통일이 올 것이고, 종점에 마침내 한반도의 통일이 올 것입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1단계 통일 방안으로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에 유사점이 많으며 향후 이 방향에서 통일을 논의하자”고 한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 국제적 스포츠 행사에서 남북한 선수단의 공동 입장과 단일팀 구성 등은 남북연합제하에서 실시하고자 한 사업을 사실상 미리 앞당겨 시행한 것이나 다름없다.

남북관계 이정표 역할

에곤 바르의 말처럼 햇볕정책의 수행이 곧 통일의 과정이다. 햇볕정책은 서독이 추진한 동방정책보다 훨씬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이다. 햇볕정책과 김대중의 통일정책은 베트남 식도 아니고 독일 식도 아닌, 순수하게 한국식 통일 방안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남북관계 개선이 남북한 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중 한반도 주변 4강과 좋은 관계를 수립했지만, 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대립 구도를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2000년 말 예정되었던 미국 대통령 클린턴의 방북과 북한·미국의 수교가 예정대로 진행되었더라면 남북관계는 획기적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김 대통령이 가장 아쉽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비록 김대중의 햇볕정책과 그 성과들이 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대립, 후임 정부들의 소극적 혹은 냉전적 사고로 인해 퇴색되고 부정되었지만, 그 정신적 유산은 여전히 살아있고 언젠가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다. 햇볕정책은 ‘절반의 통일론’이며, 앞으로도 계속 남북관계의 이정표 역할을 할 것이다. 서거 14주기를 맞이하여 김대중 대통령님의 영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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