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매광장>연극 ‘금희의 오월’을 앞두고
곽규호 광주문화재단 경영혁신본부장

초급기자 시절이었던 1996년 여름 뜻밖에 미국 출장 기회를 얻었습니다. 광주 5월극을 전문으로 펼쳐온 극단 토박이의 ‘금희의 오월’ 미국 서부도시 순회공연 일부를 동행 취재하는 영광을 얻게 된 것이지요. 공연 담당 기자를 맡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이고 이미 경력이 쌓여 있던 타사 기자들이 있는데도 왜 제가 가게 됐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토박이가 운영하던 예술의 거리 ‘민들레소극장’은 연극담당 기자로 발령받은 이후 수시로 드나들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시절 토박이의 공연 작품은 빼놓지 않고 관람했지요. 기억에 남는 공연 두 가지가 심리극 방식을 차용한 ‘모란꽃’과 마당극 형식으로 1980년 5월을 재현한 ‘금희의 오월’입니다.

1980년 5월 마당극 형식 재현

‘모란꽃’은 80년 5월 당시 금남로 가두 방송을 했던 ‘이현옥’이라는 인물이 간첩으로 몰려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시절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안기부(국정원)에 잡혀들어가 고문당하는 장면,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현실 등이 강한 인상으로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금희의 오월’은 5월 항쟁에 참여해 사망한 대학생 이정연이라는 실존 인물과 그 가족, 주변인들이 겪은 5·18을 살아남은 여동생 금희가 회고하는 형식의 작품입니다. 대인시장 상인인 이정연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애타게 아들을 찾아다니는 장면, 시장 상인들이 주먹밥 등으로 시민군을 응원하면서 대동세상을 이루던 장면, 당시 시민군들의 인간적인 모습이 잘 그려진 작품이라고 봅니다.

‘금희의 오월’ 미국 공연에는 로스앤젤레스와 새너제이 두 곳의 공연에 동행했습니다. 미국 현지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후원하고 관객도 대부분 한인들이었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눈물범벅이었던 객석의 사람들, 소감 등을 기사로 엮어 당시 편집국으로 전송했더랍니다.

‘모란꽃’ ‘금희의 오월’ 모두 고 박효선님이 창작한 연극입니다. 극단 대표이자 연출을 맡았던 박효선님은 두 작품 외에도 ‘청실홍실’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등 여러 편의 5월극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오월광대’ ‘5월 광주의 전도사’ 등의 별칭으로 불렸습니다.

박효선님은 전남대 국문과 출신으로 연극에 관심이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80년 5월에는 시민군이 되어 도청항쟁지도부 홍보부장으로 활동했답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 도청을 빠져나온 뒤 2년여 도피 끝에 징역형을 받고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1984년 극단 토박이를 창단해 본격적인 ‘오월연극’을 만듭니다. ‘박효선 전집’(황광우 엮음)에 따르면 생전의 그는 “난 어쩌면 살인자다. 그날 도청 전투에서 상원이 형이 죽었고 용준이도 M-16에 맞아 죽었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견뎌야 했던 세월을 ‘5월 연극’에 매진하고, 모든 작품에 자신과 시절을 담아 세상을 증언한 것이겠지요.

특히 작품 ‘청실홍실’은 도청에서 최후까지 항전하다 계엄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당시 심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김영철 열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5월 시민군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김영철 열사는 80년 5월 시민학생지도부 상황실장이었습니다. 연극이 만들어진 이듬해인 1998년 8월 16일 김영철 열사가 세상을 떠나셨고, 박효선님은 한 달 후 9월 10일 간암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지난 일요일, 9월 10일이 ‘오월 광대 박효선’님의 25주기였겠네요.

극단 토박이, 무대에 올려

박효선님은 떠났지만 극단 토박이는 여전히 광주의 대표적인 5월극 단체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무대를 빛내던 후배들이 고인의 뜻을 잇고, 20~30대의 신진 단원들로 이어지는 모습은 늠름하고 믿음직합니다.

박효선과 토박이. 그와 단원들이 무대에 올렸던 수많은 작품을 생각하며 그를 기리고자 한 글이 길어졌습니다. 선선하고 조용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던 그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오는 16일(토요일) 극단 토박이가 다시 ‘금희의 오월’을 민들레소극장 무대에 올립니다. 박효선을, 이정연을, 윤상원을, 그 날 산화한 열사들을, 그리고 광주를 기억하는 많은 분이 객석에 앉아 계실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