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전에 즉흥시 인터넷 사이트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어느 누가 사이트에 글감을 던지면 말랑말랑한 시의 표정과 안색을 나열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들어 너도 나도 즉흥시를 올렸다. 어느 새 이 재미에 빠져 든 나는 날마다 즉흥시에 꼬뚜레를 꿰었다. 늦은 밤에 글감을 툭 던지는 사람도 있어 무거운 쟁기 같은 한밤중을 새벽이 올 때까지 글 밭에서 끌고 다니기도 했다. 농경의 눈물과 웃음 같은 시어로 얼굴과 심장을 빚으며 시의 몸을 짓곤 했다. 행과 연에서 온기가 돌고 맥박이 뛸 때까지 몇 줌의 햇살과 달빛을 길어와 불어넣어 주었다.

시간이 가면서 상당히 인기도 얻고, 글께나 쓴다는 작가로 자리매김할 무렵, 동화 ‘헤르소의 모험’을 그 사이트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여물통 같은 동화에 입과 시간을 들이대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네 발 달린 새벽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글을 쓰곤 했다. 글을 올리면 상당히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동화가 장편으로 흘러가자, 동화 쓰는 작가가 미녀 여대생이라는 소문이 돌아다녔다. 중년 남성인 나는 그 궁금증이 글 조회수를 높여줄 거라 여겨 대꾸하지 않았다. 그 사이트의 남자 독자들은 미녀 여대생이라는 환상에 코뚜레가 꿰어 내 글에 환호했다. 급기야 여러 남자들의 프로포즈를 받았다. 나는 헷갈릴까 봐, 번호를 매겼다. 1번 단단한 몸피로 공중을 떠받쳐준 쇠뿔처럼 강단 있어 보이는 회사원 김00, 2번 꽃의 물음과 꽃의 대답에만 집중해 순한 소의 눈망울 같은 낭만적인 대학생 박00, 3번 들판의 근력으로 쭉쭉 세상을 내달렸을 법한 호전적인 포스터 디자이너 차00.

번호가 자꾸 늘어나 127번까지 나갔을 때, 어느 한 남자로부터 끈질긴 구애가 시작되었다. 나는 하얀 거짓말을 동화와 환상이 자라는 어디쯤에 방목하고 싶었지만, 날마다 해거름을 이고 귀가하는 고집스런 워낭 소리처럼 그 남자의 집요한 요구에 떠밀려 데이트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때늦은 후회에 멱살 잡힌 해 질 녘이 위태롭게 붉어져도 약속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그때 갑자기 대학생인 딸이 떠올랐다. 싫다는 딸을 얼래고 달래어 나 대신 데이트 장소에 나가게 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 6시 무렵에 절망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집요한 추궁 끝에 딸은 모든 사실을 실토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저녁을 향해 싱싱하게 날아오르던 시간의 날개는 툭 꺾여,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스름은 어둑어둑한 제 시름에 잠겨 몰락하고, 허공으로 비참한 어둠을 던지는 저녁이 까맣게 밀려들고 있었다.

그날 이후, 동화 연재 사이트는 나에 대한 비방글로 초토화되었다. 한때 궁금한 안부가 자라고 꽂의 인기척으로 화사했던 사이트는 치사량에 가까운 조롱과 멸시가 세력을 키우는 곳으로 변해갔다. 그러던 중에, 서울의 한 출판사에서 동화 ‘헤르소의 모험’을 출간하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계약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얼마 후, 어느 해킹범의 만행으로 떠도는 시詩의 부족附族 같은 즉흥시 사이트는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지만 문학에 코뚜레가 꿰인 나는 오늘도 여전히 인터넷에 글을 올린다. 조회수에 눈먼 우맹牛盲이 되지 않기 위해 성별과 나이를 어쩔 수 없이 밝힌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