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가 길가 바닥에 넘어져 있다. 거칠고 납작한 오후의 숨이 할 말이 많다는 듯 안장에 붙어 있다. 그동안 달빛과 파도 소리 흘리며 달려왔던 길의 경사가 심해 길 멀미를 한 것일까. 토사물 같은 녹슨 자국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생의 둥근 표정 같은 두 바퀴는 위태로웠던 오르막과 내리막을 벗어놓고 숨을 고르고 있다. 막바지로 바큇살을 몰아세웠던 삶의 파열음들이 몰려드는 것일까. 한바탕 바람이 분다.

산다는 것은 비탈 많은 삶의 길에서 기어 변속을 유연하게 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기어 변속에 미숙한 나는 경사진 노년의 비탈길 어디쯤에서 넘어졌다. 일흔을 넘긴 어느 날, 병원에서 검진을 하다가 우연히 갑상선 혹이 지나치게 커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덜컥 겁이 나고 억울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절망과 분노에도 묵묵히 한사코 달려왔던 마음속 불구의 걸음들이 혹으로 자리 잡은 것일까. 불면의 밤에 매달린 안간힘들이 지쳐 쓰러져 저 홀로 앓아누운 것일까.

입원을 한 다음날 오전에 과다복용의 잠을 시술한다는 전신마취 주사를 맞았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서서 삶과 죽음의 입국을 다시 심사한다는 수술을 2시간 넘게 받았다. 수술실에서 갑상선 혹을 떼어내고 회복실로 돌아와 누워 있었다. 그런데 수술 부위를 살피던 의사가 문제가 생겼다며 황급히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전신마취를 다시 해야 했다. 잠의 출구를 빠져나오지 못해 수술 후 의식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까 봐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그동안 생각 없이 시간과 건강을 흥청망청 낭비해 여기까지 온 것 같아 속상했다. 벗겨진 체인처럼 힘이 빠지고 막막했다.

삶은 세월이라는 안장에 올라 사랑이라는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처럼 바퀴를 힘차게 굴려야 하는데, 어디서 꼬인 것일까.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한때는 꽃이라는 청춘을 싣고 달렸다. 젊음이라는 꽃잎을 한 장 한 장 열면서 꽃바퀴를 굴리고 따르릉따르릉 소리 내며 열정이라는 꽃향기를 풍겼다. 체인이 감기며 결혼이라는 꽃자루를 열고 자식이라는 꽃봉오리를 아름답게 맺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

생의 마지막이 될까 봐, 기억의 가지 끝에서 피워 올렸던 꽃송이들을 떠올리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벗겨진 체인이 기름때를 묻히며 제자리로 돌아가듯 재수술을 받은 후에야 일상이라는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자전거의 녹슨 자국처럼 목에 수술 자국이 남았지만 제2의 인생이 선물처럼 주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바큇살에 감고 갈 여생이 아직은 남아 있는 듯해 내일이 기대되기도 했다.

허공의 은빛 바퀴를 굴리며 떨어진 꽃이 길바닥에 있는 자전거 위로 내려앉고 있다. 나의 남은 여생 같은 향기 나는 꽃이 제 엉덩이를 안장 위에 걸치고 있다. 바람이 페달이라도 건들면 금방이라도 일어나 바큇살로 햇살을 감으며 달릴 것만 같다. 제2의 인생, 그 따르릉 따르릉 소리를 공중에 심으며 귓맛이 좋은 소리로 익어갈 때까지 달릴 것 같다. 바람이 분다. 푸른 바퀴를 굴리며 쌩쌩 달리는 바람 자전거가 분다. 어깃장을 놓는 허공 비탈길에서도 넘어지지 않는 바람 자전거가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