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도 화성시 일차전지 공장 폭발 사고가 ‘리튬 배터리’의 안전대응매뉴얼 부재와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 사용으로 피해를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리튬은 화재 발생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일반화학물질로 분류되고 있지만, 화재시 1,000도 이상 올라 연쇄 폭발을 일으킬 수 있어 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5일 광주시와 전남도 등에 따르면 광주지역에는 세방전지 등 배터리 생산업체가 28곳이, 전남도에는 이차전지 생산업체가 18곳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지난 24일 오전 10시 30분께 경기도 화성시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불이 난 공장 3동에는 리튬 배터리 완제품 3만 5,000여개가 보관돼 있었다. 화재는 배터리 1개에 불이 붙으면서 급속도로 확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량의 화염과 연기가 발생하고 폭발도 연달아 발생한 탓에 안에 있던 다수의 작업자가 미처 대피하지 못했다.

리튬 배터리는 대부분 한번 사용된 뒤 재충전 없이 폐기되는 일차전지다.

리튬은 불에 넣거나 고의로 분해하지 않는다면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유해 화학물질이 아닌 ‘일반화학물질’로 분류된다.

리튬이 발화해 온도가 높아지면 배터리 내부를 구성하고 있는 알루미늄이나 구리 박막 등이 연소하며 금속화재의 특징을 보인다. 금속화재는 백색 섬광이 발생하며 화재가 진압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영상 1,000∼1,500도 가까이 온도가 오를 수 있어 위험하다. 알루미늄 등 금수성 금속의 경우 연소하고 있을 때 물과 닿으면 수소 가스가 발생해 폭발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현행법상 금속화재가 소방법상 화재 유형으로 분류되지 않아 전용 소화기 개발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소화기구 및 자동소화장치의 화재안전기준(NFSC 101)에 따르면 화재는 일반화재(A급), 유류화재(B급), 전기화재(C급), 주방화재(K급) 총 4가지로 규정돼 있다.

전날 소방 당국도 이번 화재 당시 마른 모래 등을 활용해 진화하는 방식을 검토했지만 전지에 포함된 리튬이 소량인 것으로 확인돼 물을 활용하는 일반적인 진압 방식을 사용했다.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샌드위치 패널은 알루미늄 등의 합금으로 만든 외부 강판 사이에 단열재를 넣은 건축 재료다. 단열재로는 불에 잘 타는 우레탄폼이나 스티로폼이 주로 들어간다.

하지만 샌드위치 패널은 중간 단열재를 강판이 감싸고 있는 탓에 불이 붙으면 열이 밖으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고, 내부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불은 순식간에 주변으로 옮겨붙는다. 지난 2022년에는 샌드위치 패널 등 복합 자재는 방화 성능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건축법이 시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소급 적용이 불가해 기존 건물에는 규제가 적용되지 않았고, 방화 성능 기준을 단열재(심재)가 700도 온도에서 10분 동안 불이 붙지 않은 채 견디면 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어 순식간에 1,000도 이상 오르는 리튬 배터리 화재에는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다.

광주대학교 이득기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리튬은 연쇄 폭발 가능성이 있고, 일반적으로 소화 방법이 어렵다”며 “화재 진압에 있어서도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으면 진화에 소요되는 물 양에 따라 피해를 키울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빠른 초동 대처와 효율적인 화재진압을 위해서라도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며 “당국차원에서도 리튬 전지를 제조·개발하는 업체를 점검하고, 화재 대응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조언했다.

한편, 광주시는 광주지역 배터리 생산업체 28곳에 대한 안전관리 실태를 민·관 합동으로 긴급 점검한다. 광주시는 △경보설비·소화설비 등 소방시설 유지·관리 △초기대응체계 운영 실태 △공장 내부 비상탈출로 확보 여부 등을 점검하며 화재위험요인을 사전에 제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