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영상 속 연어가 먼 바다에서 강으로 돌아오고 있다. 비린내 흘러내리는 7월이면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 아자바치애 호수로 연어들이 돌아온다. 귀향길 서두르는 노을의 지느러미가 팔딱거려 강물은 온통 붉다. 귀향이라는 선명하고 명쾌한 예언으로 해 질 녘의 비늘이 반짝거린다. 강을 거슬러 오르며 앞서가는 안간힘이 파문으로 들썩거려 수면(水面)이 왁자지껄하다. 연어처럼 나와 내 제자들도 문학의 고향으로 가기 위해 강물 같은 관광버스에 올라 출렁이는 여름의 물살을 거스르며 전라북도 전주로 향한 적이 있었다.

몇 년 전이었다. 하루는 대학원 시절의 지도 교수인 최승범 교수님과 전화 통화를 했다. 이야기 도중에 스승님은 묫자리를 보고 왔다고 했다. 묫자리라는 말이 울컥 슬프게 다가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내내 우울했다. 웃음도 울음도 가닿을 수 없는 생의 바깥인 묫자리라는 말이 좁고 어두운 시간의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 시간의 바닥에서는 속성으로 슬픔이 자라고 출하되어 감각과 생각의 공간에 균열을 일으켰다. 마음이 바빠지면서 스승님을 뵈러 가기 위해 스케줄을 잡았다.

신석정 시인의 맏사위인 최승범 교수님은 내 문학의 고향과 같은 분이다. 1980년대에는 29살의 나이로 대학원 박사 과정의 문을 두드릴 수 없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교수님은 나에게 박사 과정 시험에 응해 보라며 용기를 주었다. 그 덕분에 무난히 시험에 합격해 박사 과정을 밟게 되었다. 하루는 시를 알아야 진정한 문학인이 될 수 있다며 매주 시 5편씩 써 오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소설 전공이었기에 시를 쓰느라 꽤나 애를 먹었다. 몽상과 비의로 까맣게 몸집을 키우는 자정을 껴입고 시 창작을 했다. 어떤 날은 흘림체로 써 내려가는 새벽비에 궁핍한 시어를 접목시키며 창작하기도 했다. 그렇게 2년여 가까이 시 창작을 하면서 스승님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시는 자신만의 색깔로 산문과 운문을 잉태하게 하는 문학의 자궁과 같았다. 간혹 낙서처럼 사라질 습작이라는 사생아를 낳기도 했지만, 싱싱한 자궁 같은 시를 만났기에 소설이라는 황홀한 출산이 그리 버겁지 않게 다가왔다.

나는 스승님께 배운 시의 소중함을 내 제자들에게도 가르쳤다. 그래서였을까, 40여 명의 제자들이 최승범 교수님을 함께 뵈러 가겠다고 했다.

다큐 영상 속 연어가 고향의 강물 냄새를 기억한 안간힘을 빼들고 물거죽을 찢는다. 첨벙, 허공으로 폭죽처럼 터지는 물의 꽃이 둥근 파문으로 피었다 진다. 강은 온몸에 물의 꽃향을 바르느라 술렁거린다. 연어는 캄차카 반도의 강물과 만나면서 붉은색의 홍연어로 바뀐다. 고향으로 향하는 설렘이 그만큼 뜨겁고 붉은 것일까. 내 제자들은 최승범 교수님을 뵙고 싶다는 설렘 때문인지 저마다 선물을 한두 가지씩 준비해 왔다. 그 모습이 울컥 감동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탄 관광버스는 아가미를 달싹거리며 달리는 바퀴 달린 연어 떼가 되어 여름 물살을 헤치며 전라북도 전주로 향했다. 꼬리지느러미를 파닥거리는 관광버스는 무더위라는 급류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속도를 높이며 문학의 고향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