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길을 걷는다. 은행알을 밟자 고약한 냄새가 난다. 은행나무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리 고약한 냄새로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것일까. 수억 년의 묵은 시간이 노랗게 곪아 터진 저 냄새. 어제와 오래전의 어제가 냄새로 덧대어진 은행나무의 기억을 어렴풋이 짚어본다. 공룡이 존재했던 백악기에 은행알은 공룡의 발에 밟히지 않기 위해 온몸에 고약한 냄새 뒤집어쓰고 버티었던 것일까. 꽃자리마다 냄새를 매달아준 나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기억의 저장소에는 그 기억과 연관된 냄새 서랍이 있다. 아래 칸에 있는 나의 냄새 서랍에는 어릴 적에 키웠던 개 ‘노랑이’의 기억이 대나무향으로 저장되어 있다. 쥐약 먹고 대나무밭에서 죽은 노랑이를 껴안고 해 질 녘이 풀썩 주저앉을 때까지 울었다. 울다가 울다가 시퍼렇게 멍든 대나무향이 가슴에 멍울로 남을 때까지.

가운데 칸의 냄새 서랍에는 시궁창 냄새가 지독해 코를 틀어막아야 한다. 지워지지 않는 오래된 얼룩 같은 그 냄새는 내 청춘의 폭소이기도 했다.

군에 입대하고 포병학교 내무반 검열 때였다. 청소, 내복 배치, 병기 보관, 몸 청결, 질문에 대한 대답 등이 검열 대상이었다. 깨끗이 청소하기 위해 바닥에 숨어살던 적막과 먼지가 소리 지르며 나뒹굴지 않도록 물걸레질까지 했다. 검열 시간 동안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게 웃음이었다. 검열 때 한 사람이라도 웃으면, 그날 밤은 어김없이 단체 기합을 받아야 했다. 군기가 바짝 든 저녁은 예민해진 어둠을 창밖에 세워두고 일렬종대로 늘어섰다. 덜컹덜컹 창문을 움켜쥐며 주먹질하는 바람의 말투도 이때만큼은 얌전해졌다. 드디어 검열관이 우리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검열관은 뒷짐진 자세로 긴 지휘봉을 양팔에 끼운 채 ‘준비됐나’라고 물었다. 우리는 우렁차게 ‘네’라고 대답했다. 문 앞쪽부터 점검해 오던 검열관이 배가 불룩 나온 내무반 동기생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유도학과를 나와서 그런지 동기생의 배는 불룩했다. 하필이면 검열관의 지휘봉이 그의 배에 걸린 것이었다. 검열관이 큰소리로 물었다.

“이게 뭔가?”

우리는 모두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혀를 깨물며 웃지 않으려 애를 썼다. 앙다문 웃음의 저녁을 돌돌 말아 고요의 끈으로 묶어놓고 싶었다. 웃음의 몸통을 억지의 칼로 베어낼수록 웃음은 제 몸을 부풀려 입밖으로 튀어나오려 했다. 그때 동기생이 대답했다.

“배때지입니다.”

그 순간 우리 모두는 울음 비슷한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날 밤 우리는 팬티 차림으로 하수도를 5분 정도 기어다니는 벌을 받았다. 아무리 씻어도 시궁창 냄새는 씻기지 않았다. 극단적인 성격의 그 냄새는 다른 냄새와는 절대로 말을 섞지 않았다. 근육의 힘까지 좋아 생마늘처럼 독한 냄새라도 거뜬히 물리치며 우리 몸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소유권을 넘겨받은 그 냄새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하수도로 우리를 불러들였다.

바람이 말랑거리는 혀로 백악기의 기억을 핥고 지나간 은행나무의 냄새 서랍, 그 열매를 줍는다. 내 청춘의 폭소이자 냄새처럼 근력이 좋은 노란 냄새의 은행알을 봉지에 담는다. 길을 가다 멈춘 나들이객들이 은행나무처럼 치열하게 살았던 그날의 기억을 은행알과 함께 줍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