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에서 엔진이 굉음을 내며 속도가 빨라지는 차의 브레이크를 운전자가 수차례 밞았음에도 차가 멈추지 않는다면, 그 순간 머릿속은 하얘지고 심장은 요동칠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국내 등록 자동차는 2,613만4천대로, 이는 인구 1.96명당 1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수준이다. 이처럼 자동차는 우리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생활필수품이 되었지만, 급발진과 같이 생명과 직결된 사고는 꾸준히 문제로 지적돼 왔다.

한국소비자원은‘자동차 급발진’이란‘차량이 정지 또는 매우 낮은 출발 속도에서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은 높은 출력이 굉음과 함께 나타나면서 차량을 제어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올해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9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와 지난해 할머니가 운전한 차량에 탑승했던 손자가 홀로 안타깝게 사망하는 등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급발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더욱 커졌다.

최근 5년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감정한 급발진 의심 사고는 364건에 달했지만, 제조사의 결함으로 인정된 사례는 없었으며, 모두 운전자의 과실로 처리됐다. 현행 제조물 책임법에 따라 차량 급발진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제조사가 아닌 운전자 즉, 소비자가 제조물의 결함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소비자가 급발진을 증명하려면 자신의 손해가 차량의 결함 없인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해당 차량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던 중 손해가 발생했다는 것, 더 나은 설계 방안이 있었음에도 제조사가 다른 방안을 선택해 이 같은 손해가 초래했다는 것 등을 입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고도의 기술력과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급발진 사고 원인을 찾는 것은 완성차 업계와 정비 업계에서도 쉽지 않으며, 비전문가인 소비자가 직접 제품 결함을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과 유럽 역시 제조물 책임법을 도입하고 소비자 입증책임을 인정하고 있지만, 우리와 달리 소비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재판 과정에서 소비자 측의 요구에 따라 제조사가 ‘자동차에 결함이 없다’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며, 유럽연합(EU) 역시 2022년 제조사가 피해자의 요청에 따른 증거를 제공하지 않으면 결함이 있다고 간주하는 규정을 마련해 소비자의 입증 부담을 완화했다.

일본에서는 2012년부터 신차에 페달 오작동 방지 장치를 도입해 현재 신차의 90% 이상이 이를 탑재하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신차에 의무적으로 장착할 계획이다. 2012년 당시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사고 건수는 6,000건, 사상자는 9,000명에 달했으나, 장치가 도입된 이후 2021년에는 사고 건수와 사상자가 3,164건, 4,415명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한국도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유사한 기술을 도입하거나 더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국회에서는 급발진 사고의 결함 및 손해 입증책임을 제조사에 두도록 하는 법안과 사고 기록 추출 장치의 시중 공급을 의무화하거나 페달 블랙박스 설치를 활성화하는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급발진은 운전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이기 때문에, 사고 발생 시 명확한 원인 규명과 그에 따른 조치가 필요하다. 이는 운전자뿐 아니라 피해자 모두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급발진 사고의 원인을 공정하게 규명할 수 있도록 제조사에 사고 관련 데이터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법적 규정을 빠른 시일 내로 마련하고,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와 같은 안전장치의 의무화를 추진해야 한다. 제조사 또한 관련 데이터를 신속히 제공해 공정한 조사가 이루어지도록 협력하며, 안전장치 개발과 도입에 적극 나서야 한다. 소비자도 급발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안전 운전 습관을 길러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자동차 급발진 문제는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모두가 안전한 도로 환경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이를 위해 정부와 기업은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