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고인돌 공원을 걷는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인 핑매바위 고인돌이 눈에 들어온다. 고인돌은 무덤이자 제단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제단의 성격을 강조한다면 고인돌은 사원(寺院)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청동기의 어떤 사내의 죽음이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원으로 남아 있게 된 것일까. 그 사내는 한때 선사(先史)의 맥박이 뛰는 돌도끼로 원시종교의 교리를 써내려가듯 부족의 안녕을 기원했을 것이다. 교리의 문장과 문장을 빗살무늬로 채우며 부족민들의 건강과 풍요를 바랐을 것이다. 제단에 올리는 사내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으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인단 말인가.

부족의 안녕을 위해 최선을 다한 청동기의 사내처럼 큰아버지도 마을을 이끄는 어른이었다. 마을 사람들을 대신해 지방도 써주고 제삿상 차리는 법도 알려주었다. 때론 아이들의 이름도 지어주었다. 아이가 삶이라는 석탑을 잘 쌓을 수 있도록 큰아버지는 좋은 이름이라는 굄돌로 그 밑을 받쳐주었다. 아이가 삶의 석탑을 쌓다가 중심을 못 잡고 기우뚱 흔들리면 큰아버지는 다시 굄돌이 되어주었다. 어떤 날은 성현의 말씀을 굄돌로 삼고, 또 어떤 날은 수척한 해 질 녘의 안부를 묻는 노을을 굄돌로 삼았다. 마을 사람들은 다툼이 있을 때도 선비인 큰아버지를 찾았다. 그들은 헝클어진 말의 뭉치를 들고 오느라 언성을 높였다. 큰아버지는 양쪽의 말을 들은 후, 명쾌한 방향을 내려주었다. 다툼으로 인해 감정은 쉽게 찢기고 뜯어지는 속성이 있었지만 큰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어떤 파격이 꽃피어나기도 했다. 또 큰아버지는 배와 복숭아뿐만 아니라 농사를 많이 지었기에, 형편이 어려운 동네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었다.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나는 귤 한 상자를 사서 찾아뵈었다. 귤을 먹고 싶어하는지 어찌 알았냐며 반겨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덕은아, 너는 우리 집안의 선비요 학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선비 집안의 가문을 이어가야 한다. 지금 봐라, 아무도 없지 않느냐. 네가 우리 가문을 이어갈 유일한 후손이다. 내 말을 명심하거라. 너는 좋은 학자요 선비가 되어, 우리 가문을 꿋꿋이 이어가야 한다. 알겠느냐?”

큰아버지의 유언은 그때부터 내 삶의 지침서가 되었다. 어슬렁어슬렁 음습의 그림자가 다가올 때마다 큰아버지의 유언은 어떤 푸른 주술의 힘이 가득해 나를 양지의 아랫목으로 인도했다.

화순 고인돌 공원에는 핑매바위 말고도 크고 독특한 고인돌이 많다. 큰아버지의 묵직한 유언 같기도 한 초대형 덮개돌이 보검재 계곡에 밀집되어 있다. 관광객들이 고인돌 앞으로 모여든다. 지상의 첫 신전 같은 청동기의 사내가 남긴 유언을 귀담아 듣기라도 하려는 듯 관광객들은 몸을 숙이고 있다. 청동기의 유언 같기도 하고 큰아버지의 당부 같기도 한 바람이 분다. 돌화살촉을 등에 지고 달렸던 바람이 다가오고 있다. 저 바람은 청동 거울에서 흘러나오는 빛살과 함께 벌판을 달려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오늘밤도 청동기의 사내는 제단 앞에서 기도를 올리기 위해, 흙의 기억으로 흩어진 저 누워 있는 자세를 반듯하게 바로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