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피서지에서의 일이다. 젊은 남녀 한 쌍이 돗자리 위에서 서로 껴안기라도 할 듯 붙어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다. 눈부신 대낮에 입으나 마나 한 옷차림으로 그 모습이 썩 예뻐 보이지만은 않았다. 한마디씩 거들며 흉을 보고 있는데, 마침 식사 준비를 끝낸 중년 아주머니께서 그들을 불러 깨웠다. 나누는 대화를 엿들어 보니 그들은 연인 사이가 아니라 가족끼리 피서를 온 형과 동생이었다. 남자라는 것을 알고 다시 보아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여릿여릿 곱고 예쁘기만 했다.

요즈음 여자처럼 곱게 치장하는 남자들이 많아졌다. 여자들 전용 공간이었던 미용실만 해도 남자들에 의해 점령된 지 오래되었고, 피부관리실은 물론, 귀걸이며 목걸이 등 화려한 액세서리 착용도 젊은 층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화장품 가게를 드나드는 일 역시 남녀 차별이 없다. 오죽하면 여자들의 전유물이었던 ‘꽃’ 자가 남자들에게로 옮겨가 ‘꽃미남’이라는 말은 일상어가 되어버렸다.

카리스마 넘치는 터프가이가 남성의 상징이던 시대는 막을 내린 듯하다. 남자들 스스로가 원해서인지, 아니면 여자들이 그런 남성상을 찾아서인지는 모르지만, 이변이 생긴 것만은 사실이다. 우직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온 가족을 책임지고 부양해야만 했던 남자들이 어깨에 걸머진 짐이 너무 무거워 점점 내려놓고 싶다는 심리적 변천에서일 수도 있고, 가부장제 안에서 남자들에 의해 짓눌려만 지냈던 여자들이 기 좀 펴고 살아보려고 착하고 여린 남성을 원해서 일 수도 있다.

아무튼 요즈음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를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증명이라도 하듯 여자들이 원하는 신랑감 1위는 돈도 직위도 아닌 여자를 공주처럼 위해줄 착하고 가정적이며 고운 미모와 섬세한 감수성이 넘치는 남자라고 한다. 상대적으로 남자들은 착하고 다소곳한 현모양처형이 아니라 개성이 강하고 특히 경제 능력이 있으며, 현명한 여성을 고른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실업자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자신이 좀 무능하더라도 평강공주처럼 능력이 있어서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들은 착한 온달 위에서 군림하며 살고 싶은 욕구에서 생긴 현상이라고나 보아야 할까. 능력과 안정성을 갖춘 연상의 여자와 동생같이 착하고 귀여운 연하의 남자가 만나 결혼하는 것은 이미 특별한 일도 아니다. 어느 학자는 미래의 성(性)은 여성이 주도할 것이라고까지 예견하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은 시류에 따라 ‘정반합’을 그리며 흘러가기 마련이다. 인간으로 세상에 반반을 차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여자와 남자. 짝을 찾는 조건이야 어찌하든, 본성에서 거짓 없이 우러나오는 정(情)과 신의(信義)라는 소통의 도구만이라도 필히 장착해야 이탈 없이 함께 흐를 수 있는 최소한의 길잡이가 되어주지 않을까.

오늘도 꽤 알려진 방송인이 토크쇼에 나와 11살 위인 아내와 결혼한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고 있다. 옆 채널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아내가 남편보다 17살 많은 배우 부부 이야기로 떠들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