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자꾸만 이상해지는 것만 같다. 자연도 사람도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11월도 중순이 지났건만 때를 망각한 봄꽃과 태풍, 홍수 소식이 여기저기서 끊이질 않고,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을 한 사람들이 하루가 멀게 매스컴에 얼굴을 내민다. 그럴 때마다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버리고 싶은 생각에 온 심사가 뒤틀리곤 한다.

욕은 화가 몰아칠 때나 울분이 터질 만큼 격해졌을 때 상대방을 응징하고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는 소통의 도구인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저주나 수치, 모욕적인 뜻이 기본으로 깔려있어서 되도록 삼가야 할 언어이기도 하다. 특히 곱지 않은 말 자체가 끝이 아니라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꽂을 만큼의 독기가 담겨있어서 언어로 표현하는 최악의 무기가 될 때가 많다.

그런 욕이 용도에 따라 친근감으로도, 또 정을 전달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되고 있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문화나 예술작품을 보더라도 해학과 익살은 물론 퇴폐나 악의 표현에 이르기까지 일탈의 미를 사람들은 꾸준히 좋아해 왔다. 판소리의 본고장이 이 지역 전라도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판소리 다섯 마당 안에서도 창자가 한바탕 걸쭉하게 뱉어내는 욕을 듣고 나면 구수하고 재미나고 속까지 시원하다. 늘 하고 사는 말은 물론이고 욕 역시 겉으로 들리는 소리의 뜻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듯하다.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을까. 당숙 한 분이 욕표(辱票)라는 것을 만들어 온 동네 아이들에게 10장씩을 나누어주었다. 누구든 욕을 하면 그것을 처음 본 사람이 “욕표!”라고 부르짖은 후 한 장씩을 받아 가는데, 가장 많이 모은 아이에게 상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나는 꽃무늬가 그려진 커다란 고무공 하나를 상으로 받아 오래도록 잘 가지고 놀았다. 한데 성인이 된 후부터는 그때 일만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상을 받기 위해 행여 거친 말이 튀어나올까 봐 어린것이 얼마나 조심조심했을까도 별로 마음에 드는 행동이 아니거니와, 한 장이라도 욕표를 더 모으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친구들을 감시했을 것을 상상하면 차라리 욕을 하고 마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

기인(奇人)이며 천재로 유명했던 천상병 시인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부인을 부를 때, 그것도 무척 사랑스럽다고 느껴질 때 부르던 호칭이 “이 문디이 가시나”였다고 한다. 시인이 세상을 떠난 후 그 부인은 사무치게 시인이 그리울 때면 그 ‘문디이 가시나’라는 욕이 가장 듣고 싶어진다고 했다.

욕은 때로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카타르시스의 동력이 될 수도 있고, 한바탕 퍼붓고 나면 오히려 잘못한 상대를 스스로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면죄부가 될 때도 있다. 무엇보다 사심 없는 욕은 정(情)이라는 정겨움의 언어로 승화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욕 문화라는 말도 생겨나지 않았을까.

겉으로는 매몰찬 욕을 뱉으면서도 음식 사발 가득가득 따뜻한 마음을 담아냈던 욕쟁이 할머니의 식당 앞에 손님들이 줄지어 찾아들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