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윤 대통령, 광주에 ‘크게 쏘시길’
정진탄 뉴미디어본부장 겸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초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 때 “과거사 정리 없인 미래를 위해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해 화제를 몰고 왔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기시다 방문 이전에 이뤄진 방미 때에도 나와 국제적 주목의 대상이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들이는 입장은 극명하게 나뉜다. 야권과 이와 입장을 같이하는 국민은 식민지배와 강제징용 등에 대해 일본의 사죄가 먼저라며 굴종외교라고 비판하는 반면, 여권과 이에 동조하는 국민은 사죄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긴박한 국제정세 속에서 일본과의 우호 관계를 우선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입장을 취하든 무조건 다 맞다, 다 틀리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일본의 통절한 사죄가 철저히 이뤄지고 그들과의 관계도 한층 개선돼 손을 맞잡고 동북아질서를 구축해가는 것이 필요하리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속하게 현 상황은 양자 모두 충족하지 않기 때문에 무게중심을 어디에 둬야 할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여하간 윤 대통령의 이번 대일 정책은 한마디로 집약돼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보여줬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호남 발전이 대한민국 발전”

이런 식의 윤 대통령의 언급은 외교에서뿐 아니라 국내 정치와 관련해서도 나온 바 있다. 그는 지난달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개막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정치를 시작하면서 호남의 발전이 대한민국의 발전이고, 대한민국이 잘 되는 것이 호남이 잘 되는 것이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일찍이 지난해 대선 때 비슷한 언급을 해 지역 유권자들의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윤 대통령의 이런 호남 발언에 대해 입장이 극명하게 갈릴지 어떨지 잘 모르겠다. 윤 대통령을 썩 좋아하지 않는 호남 지역민에게 립서비스일지라도 듣기는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윤 대통령 지지와 관계없이 타 지역민 가운데 일부, 또는 호남을 싫어하는 타 지역민은 이런 발언을 듣기가 매우 거북스러울 수 있겠다.

윤 대통령은 혹시 극보수 계열, 영남인을 의식해 “지역감정·진영논리 정리 없이 호남 미래를 위해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는 인식에 벗어나야 한다”는 발언을 하고 싶어도 참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천추의 한을 남긴 식민 지배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미래지향적인 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에는 손을 내밀면서도 한민족으로 온갖 소외와 억울함을 당한 광주 또는 호남에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또는 지원의 손길을 적극 주지 않는다면 이는 한마디로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수사학적 표현에서 광주와 호남의 역사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고 이를 타개할 방안, 최소한 이에 대한 의지는 읽힌다. 진정 ‘호남의 발전이 대한민국의 발전’이라고 여긴다면 자신의 정치적 지지 기반(영남·보수)을 의식해 이를 실현시키지 못할 경우 이번 대일 정책방향에 대한 선명성이 의심 받는다. 야권의 극단적 거부감을 물리치고 일본과의 미래를 선택했다면, 마찬가지로 여권의 극단적 저항세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호남 미래에 대한 지원을 실제 선택하고 이행해야 한다. 다시 말해 호남의 발전이 대한민국의 발전이라고 하는 립서비스 수준을 당장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호남의 미래를 선택한다면 그것의 내용은 무엇일까. 이미 언급한 대로 호남의 발전을 위한 정부의 대폭 지원이다. 좀 현실감 있게 말하자면 퍼주기를 단행해야 한다. 영남인 또는 보수세력으로부터 굴종지원이란 말을 들을지라도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기시다 총리에게 환대를 베푼 것 이상으로 광주, 호남에 배려를 해줘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지역현안, 전폭 지원 이행을

윤 대통령은 올해 5·18민주화운동 43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헌법 가치 수호를 골자로 한 5·18 정신을 계승하는 한편, 광주를 인공지능(AI) 중심도시, 한국형 실리콘밸리로 발전시킨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기념식 때와 마찬가지로 KTX특별열차를 편성해 국민의힘 의원 전원, 대통령실 참모 등이 대거 참석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아울러 국민의힘은 18일 광주에서 현장 최고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서 관심이 쏠린다.

윤 대통령은 이번 광주 방문을 통해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 번 밝히는 것은 물론, 폄훼세력에 대한 엄단 의지를 강력히 표명해주길 바란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과 여권은 호남의 발전이 대한민국의 발전이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AI산업과 함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및 반도체특화단지 선정, 서남권 원자력의료원 건립, 공공의료원 및 국립의과대 설립, 친환경 재생에너지 산업벨트 조성, 초강력 레이저 연구시설 유치 등 광주와 전남 현안에 대한 전폭 지원을 약속하고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 호남의 발전을 막는 자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막는 자다. 호남의 발전이 곧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이고 올바른 정치이다.